"막둥이 우승했어요 … 어머니, 들리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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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평창동의 한 카페에서 안준호감독이 지나온 세월을 이야기하고 있다. 신동연 기자

서울 가나 아트센터의 '인간과 로봇의 교감'전시회에서 안 감독이 로봇을 흉내 내고 있다. 신동연 기자

올해 쉰 살이 된 막내아들은 어머니를 모시는 광주 큰형(안철호.63) 댁을 방문하면 꼭 어머니 곁에 누워 잔다. 아들 쪽을 향해 누워 고요하게 바라보는 어머니의 시선을 느끼면서 빠져드는 잠은, 어느 때보다 깊다.

프로농구 삼성을 우승으로 이끈 안준호 감독. 그의 고향은 전남 담양이다. 어머니 이아기(98) 여사는 마흔여덟의 나이에 7남매(3남4녀)의 막내둥이, 안 감독을 낳았다. 당시 아버지(안영만.작고)의 나이 쉰다섯이었다.

안 감독은 25일 모비스와의 챔피언결정전 4차전에서 이겨 우승을 확정 지은 후 인터뷰에서 "마흔여덟의 나이에 나를 낳아 주신 어머니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안 감독은 광주로 전화를 걸어 어머니부터 찾았다. "어머니, 저 막둥입니다. 우승했습니다. 드디어 해냈습니다." 어머니는 귀가 어두웠지만 막내의 목소리만은 또렷하게 알아듣고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고, 그래, 우리 막둥이, 고생했다. 정말 장하다."

▶뚱보가 농구를

안 감독이 광주 조선대부속중학교 3학년일 때 남편을 여읜 어머니는 "서울에 보내야 성공한다"는 담임 선생의 말만 믿고 아들을 상경시킨다. 안 감독은 배재고에 지원했다가 낙방한 뒤 광신상고로 진학했다. 고교 1학년 때 안 감독의 키는 1m87㎝. 큰 키를 눈여겨본 한춘택(작고) 코치가 농구를 권했다.

안 감독은 뚱뚱했다. 당시 몸무게가 95㎏이었다. 하얀 얼굴에 배까지 살짝 나온 안 감독은 처음에는 훈련하지도 못할 정도였다. 동료가 훈련할 때 혼자 하늘에 공을 던졌다 받는 훈련만 반년 이상 했다. 재미가 없어 그만두려고 했다. 그런데 그해 가을, 안 감독은 인생을 바꿀 경험을 한다.

▶김동광 같은 선수가 되겠다

고려대와 연세대의 정기전을 관전한 것이다. 안 감독은 검은 뿔테안경을 쓴 고려대의 한 가드가 서커스 같은 드리블과 고무공이 튀는 듯한 탄력으로 코트를 수놓는 모습에 반해 버렸다. 김동광(현 KT&G 감독)이었다. 안 감독은 '저런 선수가 되겠다'는 결심을 한다.

경희대에 진학한 안 감독은 자신이 '가진 재주'도, '백'도 없는 촌뜨기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당시는 고려대와 연세대가 대학농구의 양대 산맥이었고 경희대의 평범한 선수가 졸업한 뒤 농구로 밥벌이를 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망우리 신화

안 감독은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했고, 쉬는 날에도 쉬지 않았다. 이때 후배들 사이에 유명한 '망우리 신화'를 쓴다. 훈련이 없는 날이면 어김없이 수건 한 장 달랑 들고 회기동에 있는 학교에서 망우리까지 달렸다. 시조사와 서울위생병원.중랑교를 건너 구리시 방향으로 하염없이 달리면 왼쪽에 삼표연탄 공장이 나타나고, 망우리 고개를 오르는 언덕이 시작됐다.

언덕이 보이면 숨을 헐떡이며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고갯마루까지 토끼뜀으로 올라갔다. 그러고는 같은 길을 되짚어 달려 학교로 돌아갔다. 그러고도 하루에 슛을 500개 이상 던졌다. 안 감독은 엄지손가락이 다른 사람보다 짧아 후배들은 '막손이 형님'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대학 졸업 무렵 안 감독은 강한 체력과 정확한 점프슛을 가진 선수가 됐다.

▶나는 삼성맨

졸업 후 삼성에 입단한 안 감독의 농구 인생은 새롭게 시작된다. 삼성은 현대와 더불어 한국 최고의 팀이었다. 여기서 주전으로 뛰면서 태극 마크도 달았다. 안 감독은 1982년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다. 안 감독의 삼성에 대한 애정은 맹목적일 정도다. 안 감독은 "나는 삼성맨이라는 자부심과 자존심으로 버텨온 사람이다. 내 농구의 브랜드는 삼성"이라고 강조한다.

▶실패한 지도자

하지만 삼성 출신이라고 해서 지도자의 길도 탄탄대로였던 것은 아니다. 프로농구 코치 안 감독의 길은 험난했다. 97년 SK 창단 감독이 됐지만 서장훈.현주엽 등 대표선수들이 빠진 가운데 시작된 97~98시즌 초반 성적 부진으로 6경기 만에 해임됐다. 2000년엔 삼성 코치가 되어 2000~2001시즌 우승을 이룩했지만 2003년 5월 재계약에 실패해 야인이 됐다.

▶어머니의 힘

거듭된 좌절 속에서 안 감독을 지탱한 것은 어머니의 조건 없는 사랑과 신앙의 힘이었다. 어머니는 지칠 대로 지친 아들이 광주로 돌아올 때마다 사랑으로 보듬고 아픈 곳을 어루만졌다. 교회는 어머니의 품속처럼 편안하게 안 감독의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 주었다. 안 감독은 챔피언결정전 3차전이 열린 23일에도 경기가 끝난 뒤 교회로 달려갔다.

안 감독은 5월 1일 어머니를 만나러 광주에 간다. 시즌 개막 직전인 지난해 9월 이후 7개월 만에 뵙는 어머니. 이번에는 기쁜 소식과 함께 간다. 아들은 변함없이 어머니 곁에 누워 깊은 잠에 빠질 것이다. 전쟁과도 같았던 긴긴 시즌의 피로와 고통과 상처를, 어머니는 또 그렇게 그림자처럼 조용히 어루만질 것이다.

허진석 기자<huhball@joongang.co.kr>
사진=신동연 기자 <sdy1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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