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스파이 중독' 노비촉에 이번엔 영국 남녀가 당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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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작용제 노비촉에 노출된 것으로 추정되는 영국 남녀 던 스털저스(44)와 찰리 롤리(45). [페이스북=BBC 캡처]

신경작용제 노비촉에 노출된 것으로 추정되는 영국 남녀 던 스털저스(44)와 찰리 롤리(45). [페이스북=BBC 캡처]

영국 남부 월트셔주 에임즈버리에서 혼수상태로 발견돼 병원에서 치료 중인 40대 남녀가 러시아에서 개발한 신경작용제 '노비촉'에 노출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노비촉은 지난 3월 솔즈베리에서 발생한 러시아 이중스파이 출신 세르게이 스크리팔 부녀의 암살 미수 사건에 쓰였던 물질이다. 사건 전모에 따라 영국과 러시아 간에 극한 외교 갈등을 불렀던 스크리팔 부녀 사건이 재점화할 가능성도 있다.

스크리팔 부녀 발견됐던 솔즈베리서 13㎞ 떨어진 에임즈버리 #40대 남녀 혼수상태서 발견…영국 경찰 중대사건 규정해 수사

4일(현지시간) CNN 등 외신에 따르면 영국 경찰은 지난달 30일 쓰러져 위독한 상태에 있는 남녀가 노비촉에 노출됐었다는 결과를 영국국방과학기술연구소(DSTL)로부터 받았다고 밝혔다. 닐 바수 영국 경찰 대테러대책 본부장은 이날 성명에서 "두 사람이 (공격의) 표적이었다는 증거는 없다"면서도 "스크리팔 사건과 마찬가지로, 대테러 담당 경찰이 수사를 이끌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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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는 이들이 영국 국적의 던 스털저스(44)와 찰리 롤리(45)라고 전했다. 두 사람이 어떤 신분인지, 어떤 관계인지 등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들은 지난달 30일 에임즈버리의 한 건물 내에서 정신을 잃은 채 발견됐다. 사건 장소는 스크리팔 부녀가 혼수상태로 발견됐던 솔즈베리에서 불과 13㎞ 떨어진 곳이다.

이에 따라 영국 경찰은 이번 사건을 '중대 사건'으로 규정하고 조사를 진행해왔다. 닐 바수 본부장은 “노출 메커니즘을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면서 “두 사람이 스크리팔 부녀 사건 이후 오염물질이 제거된 장소들을 최근 방문했다는 근거는 없다”고 설명했다.

안보전문가인 고든 코레라는 BBC에 "이번 사건과 관련해 가장 확실한 가설은 스크리팔 사건 때 쓰인 물질을 누군가 함부로 버렸고 거기에 이들이 노출됐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신경작용제 노비촉에 노출된 40대 남녀가 혼수상태로 발견된 에임즈버리는 지난 3월 스크리팔 부녀가 같은 상태로 발견됐던 솔즈베리에서 불과 13㎞ 떨어져 있다.

신경작용제 노비촉에 노출된 40대 남녀가 혼수상태로 발견된 에임즈버리는 지난 3월 스크리팔 부녀가 같은 상태로 발견됐던 솔즈베리에서 불과 13㎞ 떨어져 있다.

노비촉은 시리아에서 정부군이 사용했다는 비난을 받은 사린가스나 김정남 암살에 쓰인 VX 신경작용제보다 독성이 훨씬 강한 것으로 알려진다. 러시아가 1970~80년대 비밀리에 개발한 것으로 알려진다. 스크리팔 부녀 사건 당시 영국은 2차 대전 이후 처음으로 러시아가 영국에 화학무기 테러를 가했다면서 맹비난했지만 러시아는 배후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이후 서방과 러시아 간에 대규모 외교관 맞추방이 전개되는 등 커다란 파장을 불렀다.

영국 정부는 긴급회의를 열고 대책을 숙의했다. 사지드 자비드 내무장관은 성명을 내고 "(이번 사건은) 지난 3월 솔즈베리에서 일어난 무모하고 잔인한 공격에 이어 발생한 것"이라며 "현재 진행 중인 조사와 관련해 내일 정부 비상대책회의(COBRA)를 주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서 솔즈베리 사건 때 경찰 측은 스크리팔 부녀가 자택 현관문 손잡이에서 노비촉에 노출된 것으로 확인했다. 스크리팔 부녀는 각각 입원 한 달 여만에 퇴원한 상태다. 경찰 측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노비촉이 일반 대중에게 노출될 위험은 낮다고 발표하면서도 다만 해당지역에 29일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오후 사이에 방문한 이들은 손을 씻고 옷가지를 세탁할 것 등을 당부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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