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연, 대통령 특위 증세안 제동걸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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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 셋째)이 4일 오전 인천 영종도 BMW 드라이빙센터에서 열린 아우스빌둥 민관협약식에 참석해 행사를 지켜보고 있다. 김 부총리는 이날 같은 장소에서 열린 제2차 혁신성장관계장관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보유세가 부담 된다면 가능하면 거래세는 경감하는 방향을 같이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른쪽부터 박춘란 교육부 차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김 부총리,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 [뉴스1]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 셋째)이 4일 오전 인천 영종도 BMW 드라이빙센터에서 열린 아우스빌둥 민관협약식에 참석해 행사를 지켜보고 있다. 김 부총리는 이날 같은 장소에서 열린 제2차 혁신성장관계장관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보유세가 부담 된다면 가능하면 거래세는 경감하는 방향을 같이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른쪽부터 박춘란 교육부 차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김 부총리,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 [뉴스1]

정부가 금융소득 종합과세 적용 기준을 20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낮추라는 대통령 직속 재정개혁특별위원회(이하 특위) 권고를 내년부터 이행하긴 어렵다고 거부 의사를 밝혔다.

“금융소득 1000만원 과세” 특위안 #김 부총리 “좀 더 검토해야 할 일” #청와대 “수용 여부는 기재부 몫” #최저임금 이어 조세 정책 엇박자 #“납세자들과 시장만 혼란 커져”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4일 혁신성장 관계장관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좀 더 검토해야 한다”며 “특위안 중 종합부동산세를 제외하곤 코멘트하기 이르다”고 말했다. 그는 또 “보유세가 부담된다면 가능하면 거래세는 경감하는 방향을 같이 고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병규 기재부 세제실장도 중앙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내년 세제개편 방향을 정하는 25일 세제발전심의위원회 전까지 준비하기엔 시간이 촉박하다”고 말했다. 기재부가 세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는 주체인 만큼 특위의 종합과세 확대 내년 시행은 사실상 사문화됐다.

이번 사태는 세제개편의 절차나 부작용 가능성 등을 외면한 채 특위에서 ‘부자 증세’를 밀어붙이면서 나온 갈등이란 해석이 많다. 하지만 기재부가 대통령 직속 기구의 권고안을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뒤집었다는 점에서 정부 내 조세정책 ‘엇박자’가 예사롭지 않다는 우려가 나온다. 앞서 청와대와 기재부는 최저임금을 둘러싸고도 이견을 드러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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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국민 재산권이 얽힌 주요 정책을 사전 조율과 공론화 없이 발표하는 바람에 국민 혼란은 커졌다. 세금은 예측 가능성이 중요한데 정부의 개정안 내용·시행 시점이 불투명해 불확실성이 커진 것이다.

기재부가 ‘반기’를 든 것은 종합과세의 세수 증대 효과는 크지 않은 대신 조세 저항은 상당할 수 있어서다. 다른 파장도 감안했다. 안 내던 건강보험료를 내거나 건보료를 더 지급해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건보료는 종합소득을 기준으로 매기는데 1000만원이 넘는 금융소득은 종합소득에 잡히게 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특위 내의 의사결정 시스템에 불만이 컸다. 14명의 재정개혁특위 조세소위 위원들이 학계와 회계법인, 세무법인 전문가들로 구성된 가운데 정부 인사는 1명밖에 포함되지 않았다. 발족 이후 10여 차례 회의를 열었으나 회의 개최 사실조차 비밀에 부쳐질 정도로 깜깜이로 운영됐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경제에 미치는 파괴력이 큰 만큼 적어도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게 정부의 의견이었다”며 “그런데 공청회 때는 다루지 않던 금융소득종합과세 얘기가 최종 권고안에 여과 없이 담겼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방향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 내년부터 추진하는 것은 무리라고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특위의 논의 단계부터 기재부의 반대 의견을 잘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특위라는 성격 자체가 청와대와 무관하게 원칙과 방향성을 제시하는 역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특위의 결론을 그대로 ‘권고’하기로 결정하고 발표된 것”이라며 “수용할지는 전적으로 기재부의 몫”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갈등을 알고서도 권고를 강행한 만큼 책임론이 제기된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조세 형평성을 더욱 강화하려는 청와대와 부작용을 우려해 속도 조절을 피력하는 관료들이 만들어낸 혼란”이라며 “당분간 납세자들과 시장만 혼란이 커지게 됐다”고 우려했다.

세종=손해용·장원석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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