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욕 비해 "신선한 충격" 없어 아쉬워|서울 국제 연극제 참가 국내 신작희곡 공연을 보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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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서울 국제연극제에 참가한 국내단체들의 신작희곡 공연은 제작여건의 제약을 감안하더라도 아쉬움을 남겨준 무대였다.
외국연극의 충격을 맛보았던 국내 관객들에게는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술래잡기』(극단작업·조원석 작·길명일 연출)는 산꼭대기 달동네 하숙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꿈과 좌절을 그리고 있다.
하숙집주인, 전직 국회의원, 가수지망생, 관료적 횡포에 희생물이 된 말단 공무원, 대학을 휴학하고 노동현장에서 일하다 노사분규사건에 휘말린 청년 등이 오늘날 우리들의 정치·사회적 현실 속에서 무엇에 직면해, 어떻게 몸부림치며 싸우다 패배하게 되는가 하는 내용이 드라마의 주제가 되고 있다.
연출가는 이를 다루는데 인간과 세계를 희화화하는 캐리커처에 의한 현실 비판적 방법을 택하고 있다. 그 결과, 이 연극의 무대는 표면적 행동의 과장된 표현을 조장하고 유형적이거나 고정적인 인물의 패턴을 제시하면서 관객들을 오락적으로 열광시키는 선동적 사건을 조성하는데는 성공하고 있다.
그러나 해학과 야유, 기지와 풍자의 과장된 육체표현과 요설적인 대사를 억제하면서 웃음 속에 눈물의 고뇌를 관객에게 전달하기에는 부족했다. 하숙집 주인의 객관적 역할과 기능을 극대화 시켰다면 이 같은 문제가 해결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한다.
『젖섬, 시그리불』(극단성좌·윤조병 작·권오일 연출)은 농촌과 광산촌에 집착한 극작가 윤조병이 앞으로 희곡창작의 과제로 삼고 있는 어촌극의 첫 번째 작품이다. 도입부의 극화는 탁월했다. 종결부의 처리도 충분히 수긍될 수 있다.
문제는 이 희곡작품의 전개부이다. 전개부에서 작가가 집중적으로 다루어야하는 일은 사람이 왜 변하고, 어떻게 변하느냐하는 점일 것이다. 이 일이 불투명하고 논리적 타당성이 없기 때문에 드라마틱 액션의 리듬이 형성되고 있지 않다. 어촌의 삶을 평면적으로 묘사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어촌이 직면하고있는 존재적 갈등의「벽」을 제시하는 일도 더욱더 중요하다.
『팔곡병풍』(국립극단·오태석 작·윤호진 연출)은 처용설화를 현대적 시각에서 재창조한 작품이다. 처용설화에서 특히 처용의 관용의 미덕에 중점을 두어 연극을 만든 연출의도는 충분히 알만하다. 문제는 희곡작품이 지니고 있는 기묘한 난해성이다.
그 난해성은 스토리에서 기인되는 것이 아니다. 희곡의 구조, 언어와 인물의 창조에서 비롯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 극작가·연출가·배우들은 서로 날카로운 대립 속에서 어떤 화해를 모색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화해가 이 작품의 독창성 또는 논리적 일관성을 잃게 하는 원인이 될 수도 있었다.
처용설화의 현대적 수용에 있어서 현대적 의미의 전달이 그래도 가능했던 것은 삶과 죽음, 선과 악, 이별과 결합의 통일된 세계를 형성하는 역할로서의 호귀마마(장민호), 용칠(권 성덕), 낭자(김지숙)의 관계가 극의 구조적 측면에서 어느 정도 확립되었기 때문이며, 특히 낭자역의 김지숙이 그 관계를 집약적으로 표현하는 연기상의 유연성과 신축성을 효과적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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