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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가시화된 ‘사법 주류’ 교체 … 권력의 절제가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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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명수 대법원장이 2일 노동법 전문가인 김선수 변호사를 포함한 대법관 후보 세 명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에게 임명을 제청했다. 문 대통령은 이미 김 대법원장을 비롯해 다섯 명의 대법관을 임명했다. 이 세 후보가 더해지면 현 정부 출범 뒤 교체된 대법관이 여덟으로 늘어난다. 전체 대법관 14명 중 절반이 넘는다. 게다가 문 대통령 임기 내에 대법관 다섯이 추가로 임기(6년)를 마친다. 이에 따라 2021년 9월에는 김재형 대법관을 제외한 모든 대법관이 ‘문재인 임명’ 대법관이 된다. 이러한 전례 없는 사태는 대통령 탄핵의 결과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정상적으로 임기를 마쳤다면 대법원장을 포함해 대법관 다섯 명을 임명할 수 있었다.

‘코드 인사’가 아닌 ‘포용 인사’가 절실 #사법부 ‘다양성’ 만큼 ‘안정성’도 중요 #청문회에서 세 후보 자격 철저히 따져야

헌법재판소도 사정이 비슷하다. 헌법 재판관(총 9명)은 대통령, 대법원장, 국회(여당, 야당, 여야 합의 각 1명)에 3명씩 지명권이 있는데, 내년 4월에는 문 대통령, 김 대법원장, 여당이 지명한 재판관이 6명이 된다. 헌재는 재판관 6인 이상의 찬성으로 위헌 결정을 한다. 이런 상황은 문 대통령과 김 대법원장이 합심하면 최고 재판소 두 곳의 인적 구성을 원하는 ‘지형’대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변화는 주요 사회적 갈등 현안과 법적 분쟁의 최종 심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예컨대 국가보안법 존폐나 동성 결혼 인정 여부와 같은 사안에서 ‘혁명적’ 변화가 생길 수도 있다.

문 대통령과 김 대법원장이 이념과 성향이 마음에 드는 인물들로 대법원과 헌재를 채우겠다고 결심하면 막을 방법은 없다. 헌법과 법률이 보장하는 권한 사용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취임 때 ‘통합’을 약속했고, 김 대법원장 역시 취임 일성으로 ‘국민의 법원’을 말했다. 혁신 못지않게 사법부의 안정성도 중요한 가치다. 법률 해석과 적용이 쉽사리 바뀌면 결국 국민이 그에 따른 혼란의 비용을 치르게 된다. 이번 대법관 제청 때 진보 성향의 재야 변호사(김선수 후보자)와 우리법연구회 출신 판사(노정희 후보자)가 포함되자 일각에서 ‘코드 인사’라는 비판을 제기하는 것도 이런 우려 때문이다.

과거 정권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에 보수 성향 법조인 위주로 대법관이 충원됐다. ‘서(서울대)·오(50대)·남(남성)’ 인사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런 점에서 비서울대 졸업자와 여성의 비율 증가는 전향적이다. 하지만 그것이 ‘출신의 다양성으로 포장된 이념의 편향성’이어서는 안 된다. 법조계에서는 향후 대법관과 헌법 재판관 지명 때 문 대통령과 김 대법원장이 ‘절제의 미덕’을 발휘해 포용적 인사를 해주기를 바라는 목소리가 커가고 있다. 아울러 대법관 자격의 핵심은 지향하는 이념의 방향이 아니라 투철한 국가관, 법치주의에 대한 신념, 윤리성이라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국회가 인사청문회에서 세 대법관 후보의 자질을 철저히 따져주기 바란다. 여야 정쟁의 틀에서 벗어난 엄격한 검증이 필요하다. 대법원은 우리 공동체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임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