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메가D램 실용화 미· 일등과 어깨 나란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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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반도체기술을 지배하는 자가세계의 산업을 좌우한다.
「마법의 돌」 「산업의 쌀」 이라 불리는 반도체는 컴퓨터· 가전제품· 자동차 등 모든 분야에서 필수적 부품이다. 그 반도체 기술이 90년대에 한국에서 꽃 피운다. 미· 일에 버금가는 반도체 선진국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반도체 기술은 지난 10년간 3년마다 집적도가 4배로 늘어났다. 그만큼 연구경쟁이 치열했다는 증거다. 지난 82년 한국전자기술연구소에서 4KD램을 개발해 반도체기술의 문을 두드린 우리의 기술력은 이제 세계수준의 벽을 두드리게 됐다. 82년 당시 8년이었던 격차가 90년대 후반에는 2년으로 좁혀진다.
반도체의 10년 후는 지난 10년을 보면 쉽게 예상되기도 한다. 78년 세계의 .반도체 수준은 64KD램이었다. 이것이 10년만에 1백 배 집적도가 향상됐다. 앞으로 10년간 이 발전속도는 그대로 유지될 것이다.
이 분야에서 앞선 일본은 금년 말 4메가D램을 양산할 전망이며 이미 16메가D램의 개발도 거의 끝내 91년이면 상용 생산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유럽은 이제 막 16메가의 개발에 착수했다.
이런 반도체 기술은 세상을 바꿔놓는다. 1메가D램은 초대형컴퓨터· 고 해상 TV· 전자자동차 등의 출현을 가져왔고 4메가D램은 음성과 화상을 인식하는 컴퓨터의 개발을 가능케 한다.
16메가D램은 인간과 비슷한 방식의 사고체계를 가진 컴퓨터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다.
한편 현재 국내의 기술 수준은 기억소자 부문에서 4메가D램의 개발이 끝난 단계. 내년 초에 양산에 들어간다.
다음 목포는 91년에 16메가D램, 93년에 64메가D램이다. 그러나 이때부터는 개발에서 대량 생산까지 3∼4년이 걸린다.
새로운 생산기계를 만들어 써야 하고 기본 기술이 달라져 제조 공정에 시간이 실리기 때문이다.
4메가D램의 회로선 폭은 0·8미크론 (1미크론은 1천 분의1㎜) 이나 16메가는 0·5미크론 64메가는 0·35미크론으로 추정되는 초정밀 기술이 필요하다.
따라서 10년 후인 98년이면 64메가D램이 시장을 석권하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또 실험실에서는 2백56메가D램까지 완성될 것이다. 반도체 선진국과의 격차는 2년으로 추정된다.
그 동안 우리 나라는 비교적 반도체 개발에 순탄한 길을 걸어왔다. 남들이 앞서나가 길은 몰라도 방향은 알 수 있었다. 또 어느 정도 기술도입이 가능했다.
산업체에서는 피나는 노력으로 남들이 상용화에 3년 이상 걸리는 것을 1년으로 단축시켰다. 여기에 컴퓨터· 가전제품 등에서 국내외수요가 꾸준히 늘어나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메가비트 급· 반도체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외국회사는 특허사용을 제소하고 보호법을 강화하는 등 제동이 심해졌다. 더우기 각국은 고속 집적도의 반도체 개발을 위해 대규모 연구계획을 세우고 국가적으로 추진, 치열한 경쟁을 전개중이다.
일본의 경우 차세대 산업기술연구계획을 세우고 기존 반도체를 능가하는 새로운 소자개발을 추진하고 있으며 유럽도 지멘스, 필립스 등 주요 기업들이 모여 95년까지 16메가D램의 실용화를 목표로 연구에 나섰다.
반도체 기술은 생명이 짧아 막대한 돈이 들어가고 위험은 오히려 높아졌다. 기술개발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진 것이다.
국내에서는 86년 초 처음으로 전자통신연구소와 삼성반도체통신· 금성반도체· 현대전자산업 등이 연구조합을 결성해 4메가D램 개발에 착수, 성공했다. 16, 64메가 급 반도체의 개발도 상황은 비슷하다. 금성사 반도체사업본부 이희국 박사는 『16메가D램의 개발부터는 판이한 환경에 처할 것이지만 지금처럼 정부와 민간이 협력하면 64메가 반도체도 98년께면 양산체제를 갖출 것』으로 예상했다.
정부의 기술 예측보고서에 따르면 세계수준은 2000년께부터 우리보다 한 단계 앞선 1G (기가) 비트 반도체기술을 확보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런 메모리용 반도체의 시장규모는 91년에 6백억달러에서 95년에는 1천1백억달러로 증가할 전망이다. 이중 50%는 기억소자용 반도체가 차지할 것이다.
한편 전자교환기· 자동화기기에 많이 들어가 정보를 처리하는 주문형 반도체 (논리소자) 는 현재의 초보단계에서 98년이면 상당한 수준의 설계기술을 확보한다. 논리소자는 발전하면 칩 하나가 컴퓨터 역할을 해 가전제품이나 각종기계에 들어가 제어기능을 한다. 지금까지 국내 반도체연구는 기억소자에만 주력해 주문형은 90%를 수입에 의존해왔다.
그러나 7차 5개년 계획이 끝나는 97년부터는 국내 정보통신기기에 들어가는 논리소자는 대부분 국내공급이 가능할 것이다.
전혀 소재를 달리하는 차세대 반도체도 대학의 기초연구에 힘입어 90년대 초에 기반이 마련돼 95년 이후는 응용단계로 들어간다. 차세대형에는 갈륨· 비소반도체, 광컴퓨터 소자 등이 있다.
광소자는 전기 대신 빛을 응용해 열이 안 나고 빛의 속도로 정보를 처리한다.
이진효 전자통신연구소 반도체연구부장은『우리 나라가 2000년까지 반도체의 설계· 제조· 소재 기술을 보유한 국가로 떠오를 것』 이라며 『그러나 여기에는 1조7천억원의 투자가 필요하다』 고 덧붙였다.
10년 후 한국의 반도체 미래상은 지금보다 몇 배의 의욕과 노력이 계속된다는 전체 속에서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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