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하나로 시야는 세계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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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서울 올림픽은 우리에게 있어 과연 무엇인가. 지난 7년여 국가 역량을 기울여 준비해온 역사적 행사를 통해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이며 또 무엇을 얻어야 할까. 올림픽 후 한국과 한국인의 모습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올림픽 후의 한국」 을 진단하는 일은 소문난 잔치 뒤의 공허를 극복하기 위해서 뿐 아니라 쏟은 노력의 결실을 극대화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서울 올림픽은 무엇보다 국민의식 전환의 계기였다. 81년9월 서울이 제 24회 올림픽개최지로 결정된 이후 지난 7년간 성공적인 올림픽 수행을 위한 집중적인 의식개혁 운동이 민관 합동으로 추진돼 왔다.
거리정비, 교통질서 바로잡기, 대중음식점의 위생관리, 호텔 등 숙박업소의 친절· 봉사· 서비스교육 강화에서부터 최근의 음주운전 단속에 이르기까지 올림픽 손님맞이 준비를 통해 우리 국민 의식이 선진화로 한 단계 올라서는 계기가 됐다.』 탁희준 교수 (성대· 경제학) 의 평가.
탁 교수는 그러나 이 같은 의식 전환이 올림픽기간 중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을 의식한 겉치레의 1회성 눈가림이거나 행정관청의 강요에 따른 억지순응이라면 올림픽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쏟았던 엄청난 재정과 노력에 비해 볼 때 너무나 보잘 것 없는 것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탁 교수는 『올림픽은 남에게 보이기 위해 치르는 행사가 아니라 우리자신을 새롭게 가꾸어 나가는 계기여야 한다』 고 강조하고 『따라서 서울 올림픽을 준비하고 치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시민의식의 발전적 변화를 일상화· 영속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 할 것』 이라고 말했다.
『교통질서· 상거래질서 등 질서의식 향상이 괄목할 만 합니다. 그러나 보다 더 중요하고 본질적인 것은 민족적 자존심의 회복이라고 봅니다.』
이각범 교수 (서울대· 사회학) 는 서울 올림픽은 우리 국민에게 「한국이 아시아· 태평양 시대의 주역」 이라는 긍지와 자존심을 심어주고 외국과 외국인을 보는 국민들의 시각을 교정시켜주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최근 1세기에 걸쳐 줄곧 외세의 침략에 시달리고 국토 강점의 치욕과 민족분단· 동족상잔의 비극을 체험하는 와중에서 생존을 위해 체념하고 무력감 속에서 자기 비하에 길들여져 왔던 한국인에게 원래의 「훼손 당하지 않은 자기」 모습을 되찾게 해준 계기라는 분석이다.
역사적으로 백제 해양제국의 멸망과 고구려 대륙 패권붕괴 이후 발해-신라의 남북국시대, 고려· 조선왕조로 내려오며 한국인의 대외 인식과 안목은 오히려 좁아져 왔다.
일제에 의한 대한제국 병탄은 그 극단의 결말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해방 후 특히 최근 한 세대 동안 한국인의 대외 인식은 세계로 확대됐으나 남북분단, 대치 상황에서 미· 일 편향의 불균형을 면치 못했다.
올림픽을 계기로 소련· 중국· 동구 등 지금까지 접촉이 없었거나 적었던 나라들과 교류가 트인 것은 그런 점에서 그 같은 대외인식의 편향성을 극복한다는 의의를 갖는다.
이는 세계가 공인하는 경제성장· 민주발전 성과와 연결돼 대외적으로는 한국의 국제적 지위를 크게 높이면서 한국인들의 자신감회복-자주성추구로 발전될 전망이다.
명동성당 이기정 수석 신부는 『이념과 체제, 인종과 종교를 초월한 지구인의 큰 잔치인 서울 올림픽은 우리 국민의 시야는 물론 마음까지를 넓혀주는 계기가 될 것』 이라고 내다봤다.
서로 적대해 온 동과 서가 함께 어우러지고 기독교와 불교, 이슬람과 힌두가 한자리서 예배를 올리는 정경을 보면서 이념과 체제의 허구성과 한계를 깨닫게 되고 인간의 삶과 역사발전에 대한 거시적 안목을 갖게될 것이란 기대다.
이런 거시적 인식과 안목은 내부적으로는 우리 사회의 개방을 가속화시킬 것이다. 우리 내부 노사간· 계층간· 지역간의 대립· 갈등은 우리의 시야와 마음이 너무 좁고 옹졸했기 때문에 확산된 측면이 있었다. 그것은 폐쇄사회의 그늘이기도 하다.
서울 올림픽은 국민의 시야를 넓힘으로써 닫혔던 마음의 문을 열어 갈등과 대립의 매듭을 푸는데 큰 역할을 하게될 것이라는 얘기다.
이 신부는 이와 관련해 서울 올림픽이 거둬들인 가장 큰 황금 열매는 「민족동질성 회복에의 접근」 이라고 했다.
적어도 올림픽기간 중에는 여와 야, 노와 사, 영남과 호남, 극우와 극좌, 도시와 농촌 등 이해가 엇갈리는 집단도 모두 한민족의 승리라는 하나의 목표 앞에서 「하나」 가 되어 열광하고 환호하고 흥분했다.
심지어 북한동포들까지도 우리의 승리를 기원하며 성원을 보냈을 것이다. 그것은 남북분단의 비극 이후 우리가 이룩한 「가장 큰 하나」 라고 이 신부는 보았다. 그것은 크게는 분단극복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북한이 불참한 아쉬움과 일부에서의 「민족화해에 도움이 되지 못한 올림픽」 이라는 비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의 성과는 분단극복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리라는 예측이다.
열린사회는 그러나 본질적으로 각양의 이념과 사상, 도덕과 가치관이 자유롭게 공존하고 부닥치는 사회다.
따라서 최근 표면화 된 「극우」 「극좌」 의 이념대립은 오히려 첨예화 될 것이란 견해가 있다. 「극좌」 와 「극우」 의 공존· 대립은 열린사회의 생리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극우」 와 「극좌」 의 대립 갈등을 극복하고 이를 역사발전의 동력으로 승화시키는 노력이며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주관한 우리의 체험은 바로 그런 가능성의 확보라는 지적이다.
이정호 교수 (서울대· 영문학) 는 이를 위해서 정부는 「극우」 와 「극좌」를 폭넓게 받아들여 중화시키는 노력을 계속해야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와 함께 극우는 「자숙」 하고 극좌는 「자제」 해 줄 것을 바랐다. 『극우· 극좌의 대립은 분단체제의 부산물이다.
그러나 극우를 표방하는 보수세력도 극좌에 가까운 진보세력도 해방 후 40여년 간 민족문제 (분단체제) 해결을 위해 이념 대립을 벌여 왔다 기보다는 기존의 이익 또는 체제수호를 위한 수단으로 대립해왔다. 역사는 혁명이 아닌 한 극우세력에 끌려가는 것도, 극좌세력에 의해 한 단계 뛰어넘는 것이 아니다. 역사는 단계적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강만길 교수 (고대· 사학) 는 『보수세력도 진보세력도 이 같은 역사발전의 참뜻을 되씹으며 「갈등과 대립」 보다는「타협과 중화」 의 길을 모색하고 이를 통해 응집된 힘을 민족문제 (분단 극복) 해결에 쏟아야할 것』 이라고 강조했다.
민족문제해결은 무력이 아닌 평화적인 대화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목적달성을 위해서는 폭력도 서슴지 않는 극좌· 극우의 흑백논리는 더더욱 배제되어야한다는 주장이다.
탁희준 교수는 『서울 올림픽을 통해 조성된 동서화합분위기는 한반도 주변국가의 긴장을 완화시켰고, 이 같은 분위기는 북한을 평화통일을 위한 협상테이블로 끌어들이는데 영향을 끼치게 될 것』 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서울 올림픽을 통해 고조된 「화해의 정신」 이 민족분단의 해결에도 열쇠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은 남에서 북으로까지 확산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난 7년간 서울 올림픽의 직· 간접투자는 2조4천5백원에 이른다. 우리 나라 88년도 전체국가 예산 17조4천억원의 14%에 해당하는 엄청난 돈이다. 직접경비 (7천4백77억원) 만 LA 올림픽의 2배다.
세계 올림픽 사상 최고· 최대 규모의 물량 올림픽준비는 「올림픽 지상주의」를 낳았고 국민들에게 지나친 기대심리를 부추겼다.
『올림픽 성화가 꺼지면 우리 국민들은 성급한 기대심리를 잠재우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 이라는 이기정 신부의 주장은 그래서 더욱 설득력 있게 들린다.
올림픽 지상주의의 물결에 휩쓸려 들뜨고 흥분됐던 마음, 허세와 겉치레 등을 모두 가라앉히고 담담한 마음으로 각자 「제자리」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열린 눈과 마음으로 우리내부와 주위의 세계를 우리의 자로 냉철하게 가늠질하며 스스로의 운명을 개혁해가야 할 것이다. <김창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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