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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O 칸쿤회의 결렬…한국엔 과연 득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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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멕시코 칸쿤 각료회의가 결렬됐으나 우리로선 "시간을 벌었다"며 마냥 반길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농산물에 대한 관세를 대폭 낮추고 시장을 더 많이 개방한다는 WTO 뉴라운드 협상의 기조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내년에 시작될 쌀 시장 개방 협상을 감안하면 이번에 협상이 타결되는 편이 한국으로선 더 유리했다. 쌀 시장을 열지 않고 의무수입 물량을 늘리는 것이 나을지, WTO 협상의 결과에 맞춰 시장을 여는 것이 나을지를 견주어 보고 다양한 협상 전략을 마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무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으로선 전체적으로 무역 자유화가 진전되는 것이 경제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농업 개방 기조는 불변=칸쿤 각료회의의 결렬이 도하개발어젠다(DDA)로 불리는 WTO 농업협상 자체가 깨진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또 이번에 채택되지는 않았지만 농산물 관세를 대폭 낮추고 농업 보조금을 줄이는 것을 골자로 한 각료 선언문 초안은 앞으로 협상에서 여전히 중요한 준거 틀로 활용될 전망이다.

만약 협상이 계속 늦어져 예정된 시행 시점(2006년 1월)을 넘긴다면 오히려 개방의 충격이 더 커질 우려도 있다.

협상 타결이 늦어지는 동안 농산물 시장의 빗장을 닫아걸고 있다가 나중에 한꺼번에 문을 열어야 할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농촌경제연구원 이재옥 선임연구위원은 "협상이 순연됐을 뿐 개방의 기조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며 "시간을 번 만큼 협상력을 추스르고 비슷한 입장의 다른 국가들과 연대를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송유철 연구조정실장은 "한국의 경우 미국.중국 등과 일대일로 양자 협상을 하는 것보다 수입국과 개도국이 뭉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다자 간 협상이 훨씬 유리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미국과 EU는 이번 협상 실패의 책임을 개도국들에 돌리며 "앞으로 뉴라운드에 합의하지 못하면 양자 협상으로 돌아설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공산품 수출 위축 우려=전세계적으로 다자 간 무역체제를 도모하는 DDA 협상이 지연되면 다자체제 자체에 대한 불신이 커질 수 있다. 세계적인 무역자유화 대신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지역별로 뭉치는 지역 간 대결 구도가 강화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아직 단 한건의 FTA도 실행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으로선 달갑지 않은 시나리오다.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로버트 졸릭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는 각료회의 개막 전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협상에서 성공하지 못한다면 보호주의자들의 목소리가 더욱 커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럴 경우 국내총생산(GDP)에서 수출입 비중이 70%에 이르는 우리로서는 타격이 불가피하다. 공산품을 팔 수 있는 시장을 찾지 못하면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실업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칸쿤(멕시코)=정재홍.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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