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풍' 최대 수혜자 오세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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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로 확정된 오세훈 전 의원의 인기가 고공비행을 하면서 정치권에서 나돌고 있는 얘기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거론조차 되지 않았던 오 후보가 강풍을 잠재우고 급부상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오 후보 흥행 성공의 비결은 무엇일까. 무수한 얘기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의 정책도, 경력도 아닌 상대 후보 덕분" "'오풍'의 진원지는 강풍" "'강풍'의 최대 수혜자는 오세훈"….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이 나오지 않았더라면 결코 오 전 의원이 뜨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것이 바로 역설의 정치며 선거의 미묘한 상대성 원리"라고 말했다.

실제로 오 전 의원의 지지율이 치고 올라간 과정은 반전을 거듭한 한편의 드라마였다. 강 전 장관은 5일 '보라빛 이미지'를 앞세워 열린우리당 예비후보로 화려한 출마선언을 했다. 낮은 당 지지도에도 불구하고 개인 지지율이 한나라당 예비후보를 크게 앞질렀다. 한나라당은 비상이 걸렸고, 소장파 의원은 깨끗한 이미지의 오세훈 카드'를 꺼내들었다. 불과 4일 뒤인 9일 오 전 의원이 출사표를 던지자 상황은 급변했다. 오 전 의원이 강 전 장관의 인기를 추월하더니 급기야는 지지율 격차가 20%포인트를 넘어섰다. 한나라당 경선에서 승리한 직후의 여론조사 결과다.

불과 3개월 전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그는 1월 여론조사에서 홍준표 의원(4.5%) 보다 앞섰지만 맹형규 전 의원(5.2%)에 뒤져 4.7%의 지지를 받았다. 강 전 장관은 17.3%로 1위였다.

그가 자신에 대한 주목도를 높이기 위해서 들인 노력에 비하면 허탈한 결과였다. 오 후보는 1월 중순 10명의 장애우와 함께 아프리카의 지붕 킬리만자로에서 인간 한계를 극복하는 '희망'을 합창했다.

지난해 6월엔 영화 '말아톤'의 실제 주인공 배형진씨, 탤런트 송일국씨와 트라이애슬론(철인 3종경기)에 나섰다. '가끔은 변호사도 울고 싶다'는 자전 수필집을 내고 정수기 CF에 출연했다. 이렇게 무진 애를 썼지만 끝내 뜨지 않자 올 연초에 "서울시장에 출마할 의사가 없다"고 말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허동원 연구조정실장은 "강풍의 본질은 기존 정치에 대한 실망감과 새 정치에 대한 기대감인데, 강 전 장관이 이런 방향으로 유권자의 눈을 돌려놓은 상황에서 오 후보가 이 분위기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고 진단했다. 한나라당 사람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이회창 후보 때문에 등장한 것처럼, 열린우리당 강금실 후보는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에게 승리를 안겨줬다"고 말하고 있다.

경희대 김민전 교수는 "유권자들은 이번 한나라당 경선에서 필승 후보를 고르는 전략적 판단을 했다"며 "두 번의 대선 패배에서 느꼈던 깊은 좌절감이 한나라당 경선의 새로운 패턴을 불렀다"고 해석했다.

열린우리당의 한 의원은 "정치인의 이미지가 중요해지면서 상대의 요인이 지지율의 결정적 변수가 되는 역설의 정치가 거듭되고 있다"며 "5.31 선거는 아직도 한 달 이상 남았고, 진짜 승부는 이제부터"라고 말했다.

최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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