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역이 필요한 南北 언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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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분단 반세기를 넘기면서 남북한 언어의 이질화 정도가 매우 심각해진 것으로 조사됐다. 적잖은 말들이 번역 없이는 아예 뜻이 통하지 않을 정도다.

국회 교육위원회 이미경(민주당)의원은 한국어문교열기자협회와 공동으로 북한의 초.중.고 교과서(7과목.9권)를 분석한 결과 맞춤법.문법.한자어.외래어.전문용어 등에서 남북한 언어 차이가 매우 크다고 15일 밝혔다.

이에 따르면 남한 학생들이 뜻을 유추할 수 없을 정도로 이질화가 심해진 말이 많다는 것이다.

'고기를 잡느라고 물참봉이 된 바지를 억이 막혀 내려다 보았다''일 없어. 난 오늘 물고기를 꼭 잡아야 해. 못 잡으면 꽝포쟁이가 되거던…'(고등중 1학년 국어) 등의 내용이 대표적인 예다.

남한 학생들이라면 '고기를 잡느라고 물에 흠뻑 젖은 바지를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내려다보았다''괜찮아. 난 오늘 물고기를 꼭 잡아야 해. 못 잡으면 허풍쟁이가 되거든…'으로 고쳐야 이해할 수 있다.

'제형(사다리꼴)에서 두 옆변(측변)의 가운데점(이등분점)을 맺은 선분'(고등중 4학년 수학)의 경우도 번역이 필요하기는 마찬가지다. 북한 체제의 특수성 때문에 우리 말의 용법을 왜곡하는 사례도 나온다.

북한 교과서에 쓰인 '수령님께서와 친애하는 지도자선생님께서는'이라는 문구가 한 예다. 남한의 경우 대등한 말을 연결하는 '와'가 쓰일 경우 'A와 B께서는'처럼 뒷말에만 극존칭을 붙인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수령'에 대해 항상 극존칭을 써야 하기 때문에 부자연스러운 어투를 사용하고 있다.

외래어 사용에서도 북한의 경우 외래어를 어원에 따라 적는 경우가 많아 우리와 차이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월프람(텅스텐).주무랑마봉(에베레스트산).시누스(사인.sine).탕겐스(탄젠트.tangent).휘거(피겨스케이팅).뽈스까(폴란드).깔리만딴섬(보르네오섬).마쟈르(헝가리) 등은 심할 경우 전혀 뜻을 알 수 없을 정도다.

문장 구성이 어설픈 경우도 적잖다. 중언부언해 남한에서는 제대로 된 문장으로 치지 않는 글이 북한 교과서에 쓰이고 있다.

'매게 나라에서(나라마다)''낮과 밤의 기온이 차가 심하며(낮과 밤의 기온 차가 심하며)'등이 그런 경우다.

남한에서 구어체라는 이유로 표준어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말들이 북한에서는 문화어(표준어)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구'로 발음되는 연결 어미의 경우 남한에서는 '~고'가 표준어지만 북한에서는 '~구'가 인정된다.

한편 16일 오전 국회의원 회관 소회의실에서 이번 조사 결과를 토대로 '남북한 언어차이와 통일언어 교육의 실태'에 관한 토론회가 열린다.

김남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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