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벗이여 평화를 향해 도약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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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오늘 서울의 함성은 5대양 6대주로 번졌다. 50억 지구인은 서울에서 들려오는 세계의 숨소리를 듣고 있다. 세계만방에서 몰려온 수천, 수만의 젊은이들, 선량한 세계 시민들은 한마당에서 평화를 노래하고 춤을 추고 환호하고 있다. 역사상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평화를 위해 모인 일은 없었다.
더도 말고 이 순간의 그 흐뭇하고, 벅차고, 따스한 마음이 세계인들의 마음속에 오래 간직된다면 그것이 바로 인류가 염원해온 평화다. 아득한 옛날 그리스의 선조들은 그런 이상과 꿈을 품고 올림픽이라는 축제를 생각해 냈다. 오늘 우리는 그 장엄하고 감격적인 장면을 우리가 사는 이땅 위에서 우리 손으로 펼쳐 보이고 있다.
세계지도위에서도 변두리, 극동의 한 구석, 지구인들이 알듯 모를 듯한 작은 반도, 그나마 반토막, 그 이름조차도 전쟁과 분단과 혼돈의 나라로 더 많이 알려진 이 고장에서 지금 세계 1백60개국 지구촌의 사람들이 모여 횃불을 올리고, 올림픽을 옅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가슴에 복바쳐 오르는 감격과 흥분을 억누를 수 없다. 오늘이 있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고, 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으며, 얼마나 피나는 아픔과 고통을 견뎌 왔는가· 한 동안은 정말 서울올림픽이 열릴 수 있을까 하는 마음 죔속에서 오늘로 달려 왔다. 그러나 올림픽은 이제 우리의 현실이 되었다.
우리가 4년마다 참여해온 올림픽을 두고 새삼 남다른 감회와 기쁨을 갖는 것도 그 때문이다. 우리는 정말 위대한 일을 해냈다. 우리민족은 잠재력과 인내와 불같은 창조력, 그리고 성취욕을 가진 무서운 사람들이다. 우리는 그것을 스스로 확인하고 온 세상에 드러내 보일 수 있게 되었다.
오늘은 분명 우연한 역사의 순간이 아니다. 우리 민족의 역량이 한덩어리가 되어 우리가 창조해낸 자랑스러운 날이다.
물론 우리는 같은 땅에서, 같은 하늘을 이고, 같은 물을 마시며 사는 같은 민족이 남북으로 나뉘어, 온세계가 하나로 모인 자리에 함께 하지 못하는 통한을 느낀다. 그것이 바로 숨길수 없는 우리민족의 아픔이며 현실이라는 것을 지나칠 수 없다· 서울올림픽 선수촌에는 인종과 언어, 문화, 종교가 다른 사람들이 모두 형제처럼 모였다. 다른 체제와 이념, 적대적인 나라의 사람들까지도 웃는 얼굴로. 손을 잡고 인사를 나누며 포옹하는 광경을 지구인들은 보고 있다. 올림픽의 감동은 여기에도 있다. 북한 동포만이 이 감동속에 참여하지 않았다.
아시아에서 올림픽이 열린 것은 동경에 이어 서울이 두번째다. 분단국에서 열린 올림픽으로도 한국은 서독 다음으로 두번째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후 새로 나라를 세운 국민이 올림픽을 주최하기로는 우리가 처음이다.
이런 기록들은 세계인들에게 값진 교훈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일제의 오랜 핍박에서 벗어나 그 페허위에 나라를 세웠다. 그 나라가 자리도 잡기전에 전쟁의 참화를 겪었다. 그뒤를 잇따라 정변과 혼란이 거듭되는 나날들은 얼마나 어둡고 침울했는가. 바로 엊그제까지도 이 나라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우리는 한숨짓고 발을 구르지 않았는가.
그러나 구름들은 걷히고 우리의 날이 시작되었다. 정치적으로는 세계앞에 남부끄럽지 않게 민주화를 향해 나아가고 있으며, 경제적으로는 31억달러를 투자해 올림픽을 준비할 정도로 성장· 발전했으며, 사회적으로는 무분별한 시위는 자제할줄 아는 성숙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자랑이기 보다는 세계 모든 발전도상국가, 희망과 용기를 필요로하는 모든 이웃들에게 기쁜 메시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를 의심하는 눈으로 바라보던 오만한 나라들에 대해서도 이제 우리는 겸허와 우정을 충고하는 자긍과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한 민족이 자존심을 갖는다는 것은 불굴의 생명력을 갖는다는 뜻과 같다. 서울 올림픽은 바로 우리의 민족적자존심을 부추겨 주었다.
그러나 눈을 세계의 지평으로 돌려보면 서울 올림픽은 또다른 의미를 갖는다. 동서와 남북의 나라들이 한 마당에서 만난것은 몇년만인가.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서방제국이 보이콧했다. 84년 미국 LA올림픽은 소련과 동구제국의 참가거부로 역시 지구의 반구대회가 되고 말았다.
그동안 올림픽의 장래를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올림픽의 정신을 얘기하기가 부끄러울 정도로 세계정세는 어둠속을 헤매고 있었다. 서울올림픽은 그런 난기류에 휘말려 표류하며 몇번이나 위기를 맞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서울 올림픽은 적대국도, 미워하는 나라도 함께 만나 화약냄새 대신 꽃의 향기로, 저주대신 노래로, 총대신 비둘기로 축복을 나누고 있다. 이 지구 덩어리 위에서 그 이상 아름다운 광경은 또 없을 것이다.
세계의 선수들은 바로 그 연출자이며, 주인공이고, 영웅들이다. 지구인들은 지금 숨을 죽이고 이들의 휴먼 드라마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올림픽을 통해 더 값진 교훈을 찾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지금 세계를 향해 돌진하고있다. 그 기세와 강인한 의지로 우리는 이념의 벽도, 체제의 한계도 극복해 내야 한다. 아득히 멀기만 하던 동유럽은 이미 낯설고 서먹한 나라가 아니며, 소련과 중국은 우리앞에 「철의 장벽」도, 「죽의 장막」도 아니다. 어느새 이들은 우리와 읏으며 손을 잡을 수 있는 나라가되었다.
우리는 서울에서 또다른 반가운 친구를 만날수 있었다. 불과 10여년전 총부리를 맞대고 적대했던 베트남은 서울에서 웃는 얼굴로 우리의 손을 잡고 「옛날 일은 덮어둡시다」고 말한다. 올림픽만이 할수 있는 일이다.
이들은 나라는 이제부터는 적어도 미워하고 외면하는 관계는 아니다. 멀지않아 우리는 이들의 반가운 이웃으로 다시 만나 손에 손잡을 날을 맞게 될 것이다. 분명 서울올림픽은 우리와 세계를, 오늘과 미래를 가깝게 만들어 놓았다.
이 순간, 이 좋은날, 이 기쁜날을 만든 우리 국민 모두에게 우리는 박수를 보내야 할 차례다. 푸르른 하늘, 잘 정돈된 길, 우람한 스타디움, 눈에 보이지 않는 신경조직과도 같은 첨단시설들, 구슬땀을 흘리며 여기 저기서 일한 무수한 역군들, 아니 우리 국민의 저력과 끈기, 그 모든것에 우리는 갈채를 보내야 한다.
서울 올림픽은 우리의 모든 것이 아니다. 우리는 방금 위대한 일을 시작했을 뿐이다. 우리앞엔 더 위대하고, 더 우람하고, 더 값있는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21세기, 새로운 세기를 향해 달려가야한다. 우리는 모든 국민이' 오늘처럼 흥겨운 날을 변함없이 가질 수 있도록 살기좋은 나라를 만들어야한다. 새로운 올림픽을 창조해낸 우리의 근면과 지혜와 힘으로 우리는 정말 온 세계가 부러워하는 세상을 이룩해야 한다. 서울 올림픽의 진정한 뜻은 여기에 있다.
세계 만방의 벗들이여, 오늘 우리는 지구촌에 평화의 새벽은 맞아들이자. 인류의 평화와 화해를 향해 더 높이, 디 빨리, 더 넓게 도약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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