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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우리에게 월드컵이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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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고정애 중앙SUNDAY 정치에디터

고정애 중앙SUNDAY 정치에디터

“슛을 해야 한다. 안 그러면 득점할 수 없다.”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싶겠지만 전설적인 축구선수 요한 크루이프가 한 말이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축구는 심플하다. 심플하게 경기하긴 어렵다.”

이번 월드컵에서 폭증했다는 페널티킥을 보며 ‘심플 이론’을 떠올렸다. 달리는 동료에게 30~40m의 패스는 너끈하게 하는 선수들이 정지 상태의 공을 11m 밖의 17.8㎡ 공간으로 차넣는 데 쩔쩔매니 말이다. 이때 공이 골라인을 통과하는 데 0.5초 걸린다고 한다. 골키퍼가 반응하는 시간은 0.6초다. 이론상으론 차면 들어간다는 의미다. 평균 성공률은 하지만 75% 정도다. 페널티킥에서도 역대급이란 평가를 받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84%)도 이번엔 둘 중 하나를 못 넣었다.

단순해 보여도 단순치 않은 게다. 실제 골키퍼와 페널티 키커가 만들어 내는 동역학은 종종 게임이론의 소재가 되곤 한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오른발잡이라면 왼쪽으로 차는 게 자연스러운 방향이다. 왼발잡이는 반대일 테고. 이런 유의 킥이 60%를 차지한다고 한다. 골키퍼는 이를 고려해 몸을 날린다. 이렇다 보니 좌든 우든 가운데든 어디로 차든 성공률은 별반 차이가 없게 된다. 다만 공의 높낮이에 따라선 다른데 중간 이상인 경우 골키퍼가 막을 확률이 3%에 불과하다. 하지만 공이 골문 밖으로 향할 가능성(18%)도 커진다. 2003년 데이비드 베컴이 우주로 보낸 선례도 있다. 그래도 높은 공의 성공률(79%)이 낮은 공(72%)보다 높다고 한다.

승부차기는 더한 두뇌 싸움이다. 최소한 다섯 번의 킥이 이어져서다. 그래도 결과는 복불복이다. 동전 던지기에 비유되곤 하는데, 동전은 그나마 누가 먼저 던지든 확률이 50%지만 승부차기에선 선축하는 팀의 승률이 60%라고 한다.

이쯤에서 잉글랜드팬의 넋두리가 기억난다. “70년대 난 잉글리시맨이 됐다. 여느 잉글랜드 사람들이 그러하듯 나도 잉글랜드를 미워했다는 점에서 말이다.”(『피버 피치』) 축구 종주국에 걸맞게 잉글랜드가 우승할 것이란 기대 속에 월드컵을 맞이하지만 별 볼일 없는 성적에 크게 절망하게 되곤 하는 4년 주기의 심리 사이클 말이다. 1966년 이후 반복돼 온 ‘의례’다. 근래 우리의 월드컵 도전사를 보면 우리도 같은 맥락에서의 한국인이 되어 가는 것 아닌가 싶다.

우리 사정이야 어떻든 월드컵은 정점을 향한다. 페널티킥은 물론 승부차기도 하는 토너먼트 단계다. 새삼 페널티킥 얘기를 꺼낸 건 그래서였다. 이젠 축구 자체를 즐기자.

고정애 중앙SUNDAY 정치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