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왜 안 왔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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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마침내 서울올림픽은 막을 올린다. 불과 보름간의 경기대회를 위해 그토록 오랜 세월, 그 많은 사람들이 애를 썼고 유달리 말도 많았다.
대회는 기대대로 성공리에 소정의 일정을 끝낼 것으로 믿는다.
결국 「행복한 서울올림픽」으로서 영원히 역사에 빛을 발하리라.
그러나 모스크바나 로스앤젤레스 대회 마냥 반쪽 잔치라는 중상은 아니지만 다소 가벼운 찰과상이나 자상과 같은 적지 않은 수모로 인해 병력으로 치면 올림픽사상 기록적이라 할만도 하다.
그 많은 내외로부터의 시련가운데 한가지 문제에 관해 최근 극적인 사태변화로 또 하나의 행복한 귀결을 보았으면 하고 기대했었는데 역시 순진한 망상으로 그치고 말았다.
이런 생각을 했었다. 『북한정권수립 기념일인 이른바 9·9절에 평양의 최고책임자가 혹시 전세계를 놀라게 하는 감동적인 선언을 할지도 모른다』….
그 내용은 이렇다.
『서울올림픽에 비록 소규모나마 정예 선수 몇 명을 보내겠다. 이것은 우리가 꼭 서울 올림픽을 인정한다는 뜻이 아니라 다만 우리의 평화의지를 세계에 천명하는 것이며 또,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다.』
여기에 중요한 조건이 붙는다. 『그러나 그 대신 남한당국은 내년초여름 평양에서 개최되는 사회주의 청년축전에 축구나 탁구팀과 함께 참관단을 보내라….』
나 스스로 실소하기도 했지만, 이러한 거래는 어느 쪽에도 실이 아닌 꽤 큰 정치·외교적 득을 준다고 생각되며 휴전선 비무장지대에서 대형음악제를 개최하는 것보다는 덜 희화적이라고 여겼다.
올림픽에 대한 북측의 도식적이고 굴절된 관념이 안타깝다. 오히려 그들이 주장하는 「공동주최」는 「분산개최」와 다름없이 정치적·사회적 위험부담이 큰 것이다.
그러나 원래의 IOC규정이나 올림픽 대회의 질서에 따라 독자적으로 선수단을 파견하는 것이 최선의 대응이다. 불참은 득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실을 최소화하겠다는 소극적이고 치졸한 자세이며, 독자참가는 알량한 명분상의 마이너스가 약간 있는 대신, 매우 큰 국제사회에서의 반사이익이 생긴다.
결국 알바니아와 같이 밀폐 지향의 은둔국이 아니라면 올림픽에 관한 한 어떤 계산이 필요 없이 참가하는 것이 곧 천도인 것이다.
특히 북한은 스포츠에 있어 상당한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올림픽 메달리스트감의 청소년이 현재도 다수 있음이 널리 알러져 있으므로 더욱 안타까운 노릇이다.
일종의 치기라는 지적도 나올 수 있겠으나 만약 북한선수가 서울에와 메달을 따내면 언론의 일각에선 『남북한의 메달을 합산하면 모두 ×개로 「코리아」는 종합순위에서 일약 ×위가 되어 세계 상위대열에 올라선다』라는 보도가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꼭 치기일까. 오히려 선량한 민족감정의 박동을 느낄 것이다.
이미 북한의 서울올림픽 불참이 공식 선언되고 끝장난 마당에 이 문제를 재론함은 스포츠라는 정치외적 사안과 관련하여 동족간에 수치스런 책략이나 삿대질과 눈 부라림의 쟁투를 더 이상 되풀이하지 않게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서울올림픽 때문에 IOC가 주선한 남북체육회담은 당초부터 비무장지대보다 더 먼 거리의 아득한 입장 차이를 양편 모두 요지부동으로 견지한 가운데 억지와 위선이 지배한 정치적 쇼에 다를바 없었다.
실현 가능한 현실적 해답은 「북한선수단의 서울행」, 아니면 「불참」둘 중 하나였으나 회담장 테이블 위 메뉴는 「분산개최」와 「공동주최」라는 허망한 가설이었다.
왜 그랬을까. 양측 회담대표는 외관상 각각의 체육기관장이지만 그들은 결코 최종적이고 주도적인 정책결정자가 아니었다. 스포츠 문제를 철저히 정치적 안목으로 요리하는 파워는 딴 데 있었다.
해방과 분단이래 40여년 세월을 줄곧 이렇게 해 온 이 민족이지만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이젠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을 이룩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스포츠현상에까지 남북이 관련되기만 하면 철두철미 정치적 감각만으로 대응하려드는 지도층의 고식과 협량은 이 땅에서 유별나며 하루 빨리 고쳐져야 한다.
그것은 이민족의 청소년들이 정신과 신체적으로 활달하게 성장하는데 큰 장애가 되는 요인의 하나를 제거하는 귀중한 변화가 될 것으로 믿는다.
고대올림픽이 AD373년 종언을 고한 것은 로마제국의 상류층이 스포츠를 천박하게 여기고 운동선수를 세력과 유희의 수단으로 삼은 풍조의 결과였다.
그이래 근세에 이르기까지 스포츠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중세 사회는 어두울 수밖에 없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어떤 체제의 나라건 청소년들의 체육활동이 대내외적으로 건실하고 활발할 때 그 사회는 건강하다. 이 명백한 진리가 한반도의 남북에서도 이제 본격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허심탄회한 상호 체육교류는 통일의 물꼬를 트는 가장 손쉬운 열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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