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전쟁 충격파, 돈줄 푸는 중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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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세계 경제는 한동안 유동성 잔치에 취해 있었다. 세계금융위기 이후 사상 유례없는 저금리 기조 덕이다. 수렁에 빠졌던 경제는 살아났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게 마련이다. 자산 시장은 과열됐다. 빚은 부풀어 올랐다. 세계 각국이 빚의 덫에 걸려들었다.

미 관세 폭탄에 중국 경제 타격 #상하이 지수 급락, 위안화 약세 #중국 “지준율 내달 0.5%P 인하” #통화긴축 들어간 미국과 엇박자

시장에 막대한 돈을 퍼부었던 중앙은행이 돈줄을 죄기 시작했다. 대표주자가 G2(주요 2개국) 중 한 곳인 미국이다. 경제가 순항 중인 미국은 경기 과열을 방지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로 통화정책 방향을 긴축으로 틀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는 올해에만 두 차례 정책금리를 올렸다. 올해 2회 추가 인상 가능성도 시사했다.

하지만 태평양 건너의 또 다른 G2인 중국은 다른 길을 택하고 있다. 종전에는 부채 증가에 따른 금융 불안을 막기 위해 대출의 고삐를 틀어줬지만 최근 흐름이 바뀌기 시작했다. 돈줄을 다시 풀기 시작했다. 수위를 높여가는 무역 전쟁의 충격파가 중국 통화 정책까지 번져온 셈이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중국인민은행은 은행의 지급준비율을 다음달 5일부터 0.5%포인트 인하한다고 24일 발표했다. 올 들어 세 번째 인하다. 대형 은행의 경우 지준율이 16%에서 15.5%로 낮아진다. 인민은행은 이번 지준율 인하로 7000억 위안(약 119조원)의 자금이 시중에 풀리는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인민은행이 완화적 기조로 돌아선 배경은 미중 무역전쟁의 먹구름이다. 미국은 500억 달러에 달하는 중국의 첨단제품 등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다음달 6일 시행된다. 미국은 중국에 대한 추가 관세 부과 카드도 만지작거리고 있다.

무역 전쟁의 수위가 높아지자 중국 금융 시장도 흔들린다. 상하이 지수는 26일 2844.51에 거래를 마쳤다. 2016년 5월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위안화도 약세다. 지난주 위안화 가치는 최근 5개월간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다. 지난 3월 이후 달러 대비 위안화가치는 2.97%나 하락했다. 중국 내 투자와 소비 관련 주요 지표도 둔화세다.

CNBC는 “미국의 추가 관세 부과에 따른 충격을 줄이고 내수가 흔들리지 않게 하기 위해 중국이 완화적 통화정책을 펼친다”라고 전했다.

시장은 인민은행의 이 같은 움직임에 놀라는 눈치다. 금융 건전화 정책을 펼치며 지방정부와 국유기업의 부채 축소에 매진했던 기존의 행보와는 달라서다.

급등하는 부채는 중국 경제의 아킬레스건으로 여겨졌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07년 4조9000억 달러이던 중국의 부채는 2016년 25조5000억 달러로 급증했다. 지난해 말 기준 중국의 기업 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160%에 달한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다음달부터 앞으로 1년간 만기가 돌아오는 중국 기업과 지방정부 부채는 8조2000억 위안(1조3000억 달러·1398조원)에 이른다.

그동안 중국 정부가 대출 문턱을 높이며 부채 관리에 나선 이유다. 문제는 자금 조달 비용이 오르며 기업의 디폴트(채무불이행)이 이어졌다는 데 있다. 무역 전쟁에 따른 충격까지 더해지면 경제를 뒤흔들 약한 고리가 될 수 있다.

왕쥔 중위안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실물 경제와 금융 시장의 안정을 지키기 위해 중국 정부가 정책의 미세조정에 나서고 있다”라고 말했다.

무역 마찰이 심화하며 경제 상황이 더 나빠지면 중국 정부가 유동성 공급을 더 늘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국제금융센터는 주요 투자은행의 전망을 인용해 “중국 거시 경제 여건이 나빠지면 지준율을 0.5~1.5%포인트 추가 인하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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