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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보상의 원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이시형<고려병원·신경정신과장>
오른손이 불구가 되면 왼손기능이 그만큼 발달한다. 양손이 불구가 되면 발이 대신한다. 발로 그리는 화가도 적지 않다. 이게 보상의 원리다. 하나를 잃으면 그 하나를 보상할 수 있는 기능이 생겨나게 된다. 이것은 개체보존의 본능이다. 이런 보상기능이 없었다면 한번 역경에 빠진 이상 영영 헤쳐 나오기 힘들지도 모른다.
다행히 인간에겐 보상의 권리가 있다. 이 본능의 힘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그 힘을 잘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몸이 불편하여 움직이지 못하면 대신 신경이 예민해진다. 행동이 줄어들수록 생각이 더 많아지는 것 역시 보상의 원리다. 아파 누워있으면 별 생각이 다 든다.
죽지나 않을까 하는 공포심에서 온갖 잡념들이 예민한 신경을 자극한다. 그래서 더욱 불편하고 괴롭다. 차라리 죽어버릴까 싶은 충동까지 일어난다.
그러나 위인은 이런 공상을 창조적인 공상으로 전환시킨다. 머리 속에 작품구상을 하고 사업계획을 짠다.
많이 떠오르는 생각들을 잡념으로 메우지 않고 이를 창조적인 힘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몸이 아프면 신경이 예민해진다. 그래서 짜증을 부리게 되는 게 보통 사람이지만 위인은 이를 창조적인 갈등으로 승화시킨다. 예민한 상태의 신경을 창조적인 센스로 활용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건강할 땐 얻기 힘든 행운이다. 그런 능력이 생기지도 않는다. 그 힘을 어느 쪽으로 쓰느냐에 따라 투병의 역경이 주는 의미가 달라진다. 「고야」의 그림은 귀머거리가 된 후 더욱 선명한 광채를 발한다. 청각을 잃은 그에겐 시각이 더 예민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귀가 먼 후의 예민해진 신경을 창조적인 시각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
「나폴레옹」군대의 스페인처형장으로 달려가 달빛아래 핏더미 위에서 그렸다는 『5월 3일의 처형』은 문외한인 나에게도 너무나 강렬했다. 낭자한 선혈이 얼마나 진했던지 내 옷을 만져봤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괴력적인 창조성은 건강한 범인의 경지에선 결코 우러날 수 없는 것이었다.
역경을 역으로 활용한데「고야」의 천재성이 있는 것이다. 「르누아르」가 생명의 화가로 격찬 받는 까닭도 여기 있다. 신경통으로 마비된 손가락을 움직일 수 없게 되자 손에다 붕대를 감아 그 속에 붓을 끼워 작업을 계속한 것이다.
그런 역경 속에서도 그의 그림은 밝고 즐거운 생의 환희로 가득차 있다. 신비로운 경지가 아닐 수 없다. 인격적으로 승화된 그의 내면세계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역경에 처했을 때 비로소 그 사람의 인간 됨을 알 수 있다. 좌초하고 마는 사람도 많지만 이것을 계기로 더 큰 도약을 하는 사람도 있다.
역경이 가져다주는 보상의 원리, 보상의 힘을 믿고 이를 찾아 개발해야한다.
곤경에 빠진 짐승이 더 잘 싸운다. 역경이 때로는 무서운 힘을 가져다준다. 이를 창조적으로 쓰느냐, 파괴적으로 쓸 것이냐, 이것이 당신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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