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중 선한집 출감 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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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수인들은 늘 벽을 만납니다. 무수한 벽과 벽 사이 운신도 어려운 각진 공간에서 우리는 부단히 사고의 벽을 헐고자 합니다. 생각의 지붕을 벗고자 합니다.…심동의 빙한 온기 한 점 없는 냉방에서 우리를 덮어준 것은 동료들의 체온이었습니다. 추운 사람들끼리 서로의 체온을 모으는 동안, 우리는 냉방이 가르치는「벗」의 의미를, 거울이 가르치는「이웃의 체온」을 조금씩 조금씩 이해해 가는 것입니다…』(무기수 신영복이 계수씨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3공화국서 5공화국사이 암울했던 시대상황에 온몸으로 부닥치다 감옥으로 가야했던 사람들이 담장밖에 두고 온 가족·친지들에게 그들의 인생관·세계관·신념들을 담아 보낸 옥중서한을 묶은 단행본들이 최근 여러 권 출간되어 독서가에 잔잔한 감동의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이 책들은 한결같이「갇힌 상황」속에서의 투명한 자기성찰 끝에 얻어진 인간에 대한 진한 사랑·힘찬 신뢰를 노래하고 있어 읽는 이에게 깊은 여운을 남겨주고 있다.
최근에나온 이러한 책들 중 대표적인 것은「5·3인천사태」에 관련 수감된 장기표씨의 『새벽노래』(미래사),『우리 사랑이란이름으로 만날 때』(형성사), 유상덕 외 15명의 해직교사가 쓴『끝내지 못한 마지막 수업』(미래사), 통혁당 사건에 연루된 신영복씨의『감옥으로부터의 사색』(햇빛출판사), 전 민청련의장 김근태씨의 옥중기록『이제 다시 일어나』(중원문화) 등이 손꼽힌다.
『새벽노래』는 장기표씨가 부인과 딸들에게 보낸 것으로 가족을 향한 그리움과 민주화에 대한 낙관적 희망을 싣고있다.
같은 장씨의『우리 사랑이란 이름으로 만날 때』는 시집가는 누이에게 보내는 편지형식의 글모음으로 사랑의 참된 형태에 대한 생각을 담담히 그리고 있다.
『사랑의 반대말은 증오만이 아니란다. 사랑에 대한 최대의 반대말은 무관심이며, 그 외에 착취·불평등·억압·이기심·분열·불신·폭력·부자유·독재 등 사랑의 반대말이란다….』
통혁당 사건으로 투옥됐다 지난 8월 가석방된 신영복씨가 쓴『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신씨가 20년 20일에 걸친 감옥생활 중 계수·형수·부모에게 보낸 편지를 묶은 것.
징역사는 사람들의 바람과 한을 따뜻한 사랑으로 감싸 자신과 동료수인들의 처지나 마음을 곱게 나타내고 있다. 88년 1월 계수씨에게 보낸 글에서 신씨는 이렇게 읊고있다·『옥 뜰에 서있는 눈사람/연탄조각으로 가슴에 박은 글귀가 섬뜩합니다/「나는 걷고싶다」/있으면서도 걷지 못하는 우리들의 다리를 깨닫게 하는/그 글귀는/단단한 눈 뭉치가 되어/이마를 때립니다.』 <이교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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