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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만에 그려낸 "숲의 신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처음 춤이 시작되고 얼마동안은 런던 컨템포러리 무용단(8∼9일·국립극장 대 극장)의 명성이 거짓처럼 보였다. 제명인『그리고 그들은 행동한다』의 4피스는「샤갈」의 그림 같은 4개의 긴 천이 드리워진 무대미술과, 어두워지고 밝아지는 조명과, 음조의 변화가운데 행동의 다양성을 춤으로 구체화한다기보다 행동의 영역을 확대하는 시도였다.
그런 의미에서 일제외과 일상적인 동작 위에서 전개되는 발랄한 움직임은 힘의 남성기법과 부드러움의 여성기법이 어우러지는 단순동작의 반복처럼 다가와 지루해질 위험도 있었다.
이 「동작의 작품」은 4번째 작품『무용교실』의 참작표본처럼 내세워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같은 동작(행위)이라 하더라도 『무용교실』은 그들의 기법단련과정 자체가 예술창조의 「양」임을 보여주는 감동적인 교실이다.
북소리의 변조에 맞추어 남성 10명과 여성 7명을 힘과 부드러움으로 적절히 배합시키는 무용기호의 명증한 체계화는 얼마나 지난한 테크닉 숙달의 입문 다음에야 예술이 가능해지는가를 몸으로 실증한 것이다.
나는 우리의 무용수들, 특히 남성무용수들이 이 작품에 나오는 예술가들의 경지를 하나의 전범으로 삼았으면 한다. 작품 자체도 예술적이기는 3번째의 『숲』이 아닐 수 없다.
듀엣으로 시종 된 짧은 소품의『요정』은 동화 속의 요정이라기보다 인간적인 요정 냄새가 물씬거리는 그런 의미에서 섬세함보다 강인한 인상이 앞서는 작품인데 그것이 전진 곡인 양 다음작품 『숲』은 요정들의 동화를 숲의 신화로 이끌어간다.
『숲』작품 하나로 우리는 아무리 비싼 대가를 지불했더라도 값을 따질 수 없는 예술의 전율적인 보상을 받는다. 안무의 「로버트·코한」은 무용의 시인이다. 그의 시적 상상력은 바람소리, 새소리, 벌레소리의 어두운 숲 속에「에코」의 신화을 재현하는 것으로 불을 댕긴다.
숲의 고요는 움직임들을 활인화로 3규정시킨다.
음향효과에 맞추어 억제된 무용적 열정은 숲 속에 잠겨있는 이미지들을 그럴 수 없이 다양한 목소리로 전달한다.
숲의 신화를 30여분 제한된 시간 안에 그려낼 수 있다는 점에서 무용은 다른 어떤 예술들도 해낼 수 없는 능력을 입증한다.
무대 위에는 모든 조형이 이루어진다. 사냥과 하늘과의 통화는 신비의 원천이자 극복되어야할 그 무엇인 숲의 양면성을 제의로 수령함으로써 예술을 싹틔우는 것이다. 아쉬웠던 것은 그 탁월한 개인기의 솔리스트와 완벽한 앙상블의 2인무, 3인무의 무용수들을 밝혀주는 프로그램 발간의 불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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