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음악제 참가인원 못 줄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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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세계적 작곡가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서독 국적의 한국인 윤이상 박사(71)는 서베를린중심부에서 자동차로 30여분거리인 서남쪽의 부유한 교외에 살고 있었다.
지난8월말 국회외무통일위 북유럽방문단 (단장 김현욱 위원장)의 일원으로 참여했던 이독구 의원 (평민) 이 서베를린 방문도중 지난 7월 남북공동음악제개최를 제의한 윤박사의 의중을 탐색키 위해 윤박사 댁을 찾았을 때 동행한 기자는 1시간 여 그와 회견했다.
그는 『순수한 민족주의자로 정치적 색깔이 없다』 고 거듭 강조했으나 『북한은 독재체제가 아니고 전체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공개적 비판을 할 수 없다』『남한의 경제성장이 도대체 얼마나 지속될 수 있느냐. 남한이 잘먹고 잘산다고 하나 전세계 공황이 오면 어떻게 되겠느냐』는 등 자신이 주장하는 입장과는 엇갈린 말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또 자신이 당한 동백림 사건 때의 고초에 대해 한국정부가 아무런 의사표시를 하지 않은데 대해 분노를 노골적으로 표시했다.
-남북공동음악 제를 휴전선상에서 열자고· 제의한 동기는 무엇입니까.
『우리 민족의 분단과 고통의 상징인 휴전선에서 몇만 명의 남북 청중과 각국 귀빈을 모아놓고. 탤리비전이 중개하는 가운데 민족 동질성을 부르짖는 민족합동음악축전을 열어 전쟁귀신을 좇고 전세계 평화를 부르짖자는 거지요. 이 축전은 별안간 나온 게 아니고 몇 해 전부터 생각했던 겁니다』
-금년 7월 정식으로 남북양쪽에 제의하게된 구체적 배경이 있을 게 아닙니까.
『노태우 대통령이 작년 선거 때(남북한관계에 관한) 여러 제안을 해 기대를 걸었지만 아무리 걸어봐도 세월만 가고 해서…. 남북의 정치적 해결에는 막대한 시기가 소요될 전망이어서 음악으로 민족 동질성을 회복하는데 기여하자고 제의한 것입니다. 정치회담에 앞서 민족의 한을 음악으로 먼저 풀자는 겁니다』
-구체적 방안은 무엇입니까.
『오는 10월 휴전선상에 가설무대를 마련, 남북 양쪽 각각 2백 명씩의 연주자와 합창단원으로 내가 작곡한 교성곡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45분간 소요) 와 남북한 곡 1개씩을 선정해 하자는 거지요. 각각 2만∼3만 명의 대규모 청중을 앞에 두고 위대한 고급 음악보다 대중을 감동시킬 수 있는 음악으로 민족잔치를 열자는 겁니다(그는 세부계획을 자세히 설명했다)』
-남북한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북한은 판문점 서쪽 휴전선상4km지대에 가설무대를 만들 수 있다고 찬성했으나 전봉초 예총 회장은 판문점에 1천명이상 모일 수 있는 장소가 없다고 판문점 도면까지 보내왔어요』
-판문점서쪽 4km지대는 수많은 지뢰밭인데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북한은 하루만에 지뢰를 철거할 수 있다고 선언했어요. 단3일만 지뢰를 철거하면 각각 2만∼3만 명이 모일 수 있는 가설무대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걸 못합니까』
-꼭 양측 5만여 명이 모이는 대규모 음악제를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현실적으로 지뢰 제거도 수월치 않아 위험이 많은데…. 탤리비전 생중계를 해도 될텐데요.
『많은 사람이 모여야 감동의 효과가 클 수 있고 더욱 생생한 현장감도 살릴 수 있기 때문에 인원 축소에 대해 양보할 생각은 추호도 없고 꼭 관철할 생각입니다. 민족적 행사를 축소하기보다 관철에 높은 뜻이 있으므로 나는 흐지부지하기보다 철저히 추진하겠습니다. 이번에 관철이 안되면 내년 꽃피는 5월에 꼭 관철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방한해 당국자와 만나 해결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사실 전두환씨와 노태우씨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판단했고 어느 면에선 최소한 언론자유도 있다고 보기 때문에 희망을 걸고 노태우씨에게 제의했습니다. 그랬더니 답신은 없고 이곳 총영사관에서 구두로 전봉초 회장과 합의하라고 통보하는걸 보고 정부의 소극적인 의도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작년 배한 방문 때 이 문제를 타진해 보았습니까.
『북한에선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한 예술가로서 통일문제에 이처럼 특별한 관심을 갖게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1964년 우리 부부는 강서고분 사신도 그림(평남 강서군 소재) 과 젊은 시절 음악공부를 같이했던 친구를 보러 우연히 북한을 방문했지요. 가보니까 사회·문화·생활적으로 이질감을 느꼈고 그때 벌써 이래서는 안되겠다, 통일만이 우리 민족의 살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순수한 민족주의자로 정치적 색깔이 없습니다.(그는 이 말을 회견도중 여러 차례 강조했다).
민족주의라는 용광로 속에 이데올로기를 집어넣어 용해시켜 통일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김일성 주석을 만났을 때마다 우리 민족은 어떻게 되느냐고 말했습니다.
나에 대해 공산주의자니, 뭐니 하는 추측은 아주 가소롭습니다. 민족주의자라면 둘째가라도 서러울 텐데…』
-민족주의자라면 왜 한쪽만 상대합니까.
『역대 정권과 관계하지 않은 것은 그 정권들이 순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승만씨도 독재정권이었고 박정희씨도, 전두환 씨도 총칼로 정권을 잡고 막대한 독재를 했습니다.
80년대 초 전두환 정권의 고위관리 (부산고 제자인 허삼수 당시 청와대사정수석비서관지칭)가 와서 협력하자고 했으나 안한 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이야말로 독재사회가 아닙니까.
『북한은 문제가 다릅니다. 전체주의 국가지….여러분이 이북 안 가봐서 모릅니다』
-민족주의자임을 강조하시면서 서독 국적을 갖고 한국 통일문제의 전면에 나서는 것에 모순은 안 느끼십니까.
『미국에서 이스라엘 민족주의자들이 자기나라를 어떻게 돕고있습니까. 국적이란 하나의 외투라고 봅니다. 자기 자신을 따뜻하게 하기 위한 것이지요』
-이스라엘 국민들은 2천년간 유랑한 민족이기 때문에 윤박사의 경우와는 다르지 않습니까.
『정신적 소재에 현실을 따지는 그런 상태는 지났다고 봅니다. 나를 독일인으로 보지 않습니다』
-67년의 이른바 동백림 사건 때 치른 고초 때문에 한국과의 관계를 소원히 유지하는 건 아닙니까.
『이남에서 내가 인간으로서 처참하게 당한 경험에서 못 벗어나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서독국적 취득도 동백림 사건 이후 여권 경신 때 대사관에서 까다롭게 굴어 화가 나 했지요』
-며느리가 이북 출신이라면서요.
『외국에 오래 살다보니까 아들애가 우리 풍속도 모르고, 또 동백림 사건 때 그 애가 큰 충격을 받아 남한공포증도 있고 해서 북한에 유학을 보냈지요. 마침 혼인할 나이(30여세)도 되어 우리 가정부터 통일시키는 게 낫다고 생각해 평양에서 무용가 며느리를 얻게 됐지요』
-민족음악축전을 성사시키기 위해 방한해 교섭할 의향은 없습니까.
『내가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을 한국정부가 막을 것이라고 어떻게 안 믿을수 있겠소. 정부의 신변보호 속에서 움직여야하고 날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북한도 그렇지 않습니까.
『북한에선 그런 느낌이 없었습니다. 내 건강상 (방한할 경우)견딜 수 없지요. 기관지·심장병·폐기증을 앓고 있어 잘 걸을 수도 없고, 회견도 많이 해야하고…』
-그렇게 건강이 나쁘시다면서 금년에도 일본에 갔다오지 않았습니까.
『작년 평양에도 다녀왔고 일본·스페인에도 갔다왔습니다. 그건 증대문제가 아니고….
이남에 가면 내가 도달할 수 있는 게 있어야지요. 고향을 방문하고 친척을 만나는 게 절실하나 그걸 억제하고 민족을 위해 뭔가 하고싶습니다. 한국정부가 필요이상 거리를 두지 말고 인간적으로 대하라 이거지. 뭘 하도록 해야지 대접만 받고 와서야 되겠소 불확실한 상태에서 가고싶지 않습니다. 남한대표를(베를린으로) 보내면 북한대표도 불러 내가 주재해 해결할 수 있습니다』
-분위기조성을 위해서라도 방한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남한에서는) 모두 조지는 사람만 봤습니다. (머리 정수리의 깊은 흉터자국을 보여주면서)67년 동백림 사건 때 고문을 하도 하길래 자살하려고 재떨이로 6번 찍으니까 졸도해 사흘 뒤 병원에서 깨어났는데 오늘날에도 그 꿈을 꿉니다』
민족분단 때문에 당한 것이어서 누굴 처벌하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이걸 풀자는 거지요』
-분단이 고착된 건 6·25남침의 원인도 큰 게 아닙니까.
『(손을 내젓고 언성을 높이면서) 전쟁문제는 여기서 얘기하지 맙시다. 몇 날 밤을 지새면서 얘기해야 하고 문제도 커지고….누가 한국 전쟁을 시작했느냐는 미국에서도 여러 설이 있고 문제가 많습니다』
-민족주의자로서 중간적 입장에서 통일의 촉매 역할을 하겠다면서 한국체제만 비판하고 북한의 독재에 대해서는 입을 막고 있는 게 형평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고 안타까워하는 사람들도 많은데요.
『미묘한 문제입니다. 이북도 비판합니다. 이남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이기 때문에 그 기준에서 비판하지만 북한은 사회주의여서….소련 등 사회주의 국가는 다 그렇지 않습니까(전체주의라는 뜻)』
-그러나 공개적으로 북한체제를 비판한 적이 있습니까.
『이북은 한사람이 오늘날까지 정권안정을 유지해 어디부터 손대야할 줄 모르기 때문에 공개적 비판 대신 많은 충고를 해 왔습니다』
-이북에 충고해서 뭐 시정된 게 있습니까.
『서양음악을 많이 하게 됐지요. 물론 주체사상을 파괴 않고 말입니다. 이 일(음악제)을 성사시키기 위해 양쪽 다 자극하지 않으려 합니다. 사실 중립적 입장이라지만 절대 중립은 있을 수 없지요. 내 출신이 어디요. 남한 아니요. 남쪽에 대해 애가 더 탐니다』
-그렇다면 남한에도 조용히 충고하는 게 통일기운에 도움이 더 될게 아닙니까.
『선입견 때문에 내 충고를 순수히 받아들이겠습니까』
-윤박사도 가슴을 열고 진심으로 남한과 대화할 용의는 없습니까.
『한국에 가는 걸 반대치 않습니다. 그러나 아직 저 사람 (동석한 부인 이수자 씨를 가리키며) 이 공산주의자라는 등 오해가 많은데 그게 물리면 하겠습니다』. 【서베를린=이수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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