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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반박 시론

“문재인 케어, 국민과 의사에게 모두 좋은 처방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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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윤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

김윤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

※ 본 시론은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의 5월 29일자 시론(의사들이 ‘문재인 케어’를 반대하는 이유)에 대한 반론입니다.

건보 보장성 낮아 빈곤층 전락 #비급여 줄일 ‘문 케어’ 지지 많아 #민간 의료보험료 부담도 줄 것 #의사가 국민 신뢰 회복할 기회

서인수씨(가명)는 결혼하고 나서 10년 만에 장만한 아파트를 팔고 전세로 옮겼다. 올해 일곱살이 된 아이가 ‘신경모세포종’이란 희귀 소아암 진단을 받으면서 각종 검사와 치료에 드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은행 대출도 이제 한도가 꽉 찼기 때문에 결국 집을 팔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얼마나 비용이 더 들어갈지 걱정이다.

서씨 가족의 사례는 건강보험 보장성이 낮아서 생기는 안타까운 경우다. 한국에서 매년 44만 가구가 서 씨처럼 병원비 때문에 빈곤층으로 전락하고 있다. 대다수 국민이 비급여를 없애고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높이겠다는 ‘문재인 케어’에 찬성하는 이유다. 문재인 케어가 시행되면 민간의료보험료 부담도 크게 줄어들 것이다. 국민 10명 중 9명이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해 있고, 가구당 민간의료보험료는 국민건강보험료의 약 3배에 달한다. 건강보험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다 보니 벌어지는 기이한 현상이다.

문재인 케어에 반대하는 의사들은 비급여 진료와 보장성 강화와 별 관련이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한마디로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비급여 진료는 국민을 빈곤층으로 전락시키는 주범이다. 우선 국민이 직접 부담하는 병원비 중 약 절반이 비급여 진료비다. 초음파·MRI 등 의학적으로 필수적인 검사도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비급여 진료가 고액 진료비 부담을 덜어주는 ‘본인 부담 상한제’를 무력화시키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진료는 본인이 최대 200만 원까지만 부담하면 그 이상은 건강보험이 책임지지만, 비급여 진료비로는 수억 원이 나와도 개인이 모두 부담할 수밖에 없다. 병원마다 비급여 가격이 천차만별이고 의학적으로 필요한 진료였는지 아닌지를 구분할 수도 없기 때문에 본인부담금 상한제를 적용하기 어렵다.

시론 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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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급여를 한꺼번에 없애지 않으면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할 수 없다. 지난 10여년 간 정책 실패로부터 얻은 값비싼 교훈이다. 2005년부터 2016년까지 정부는 단계적으로 비급여를 없애는 방식으로 보장성을 강화하기 위해 20조~30조원을 추가로 투입했다. 하지만 건강보험의 보장률은 10년 넘게 제자리걸음을 반복하고 있다. 이는 ‘비급여 풍선효과’ 때문이다. 정부가 비급여 항목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면 병원이 새로운 비급여를 늘려서 결국 국민이 부담하는 병원비가 줄지 않는 현상이다.

2016년 건강보험 보장률은 2015년에 비해 0.8% 포인트 감소했다. 보장성 강화를 위해 정부는 3000억 원 이상을 추가로 투입했는데, 전년도보다 국민의 병원비 부담은 오히려 약 6000억 원 이상 늘어났다. 이는 비급여 진료비가 1조원이나 늘어났기 때문이다. 반대로 지난 정부에서 문재인 케어처럼 비급여를 한꺼번에 급여화하는 방식을 택했던 암을 비롯한 4대 중증질환에서는 보장률이 80%를 넘어섰다. 비급여를 한꺼번에 없애지 않으면 결코 보장률을 높일 수 없음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비급여 진료는 의사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주범이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44%는 “의사들이 환자의 생명보다 돈은 우선시한다”고 응답했다. 의사들은 억울하다. 이제까지는 건강보험 수가가 낮아서 생긴 적자를 비급여 진료로 메꿀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건강보험 수가를 적정 수준으로 인상해서 의사들이 더는 비급여 진료에 의존하지 않고도 병원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여러 차례 약속했다. 정부도 ‘비급여 풍선효과’가 건강보험 수가가 낮아서 생기는 구조적인 문제라는 점을 이제는 잘 알고 있다. 문재인 케어는 의사들이 국민에게 신뢰를 회복할 좋은 기회다.

의사들은 초음파·MRI 등 비급여 검사에 건강보험이 적용되면 의학적으로 꼭 필요한 환자가 검사를 받을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고 걱정한다. 합리적인 우려이지만 최근 정부 정책을 보면 희망이 보인다. 최근 복부초음파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면서 교과서적인 급여기준에서 벗어나더라도 의사의 판단에 따라 검사를 할 수 있도록 인정했다. 앞으로 다른 비급여 진료에 대해서 같은 원칙을 적용할 예정이다. 다만 불필요하게 남용되지 않도록 이런 경우 환자가 진료비를 더 부담하도록 했고, 병원의 과잉진료를 억제하는 새로운 체계도 마련하고 있다. 문재인 케어는 의사들이 전문가 자율성을 회복할 좋은 기회다.

김윤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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