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속 유학 1번지 - 필리핀을 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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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의 영어 환경 속에서 공부하고, 국내 특목고나 아이비리그 진출을 목적으로 조기유학을 떠나려 한다면 어느 지역을 선택할까? '조기유학=북미지역'이라는 과거의 등식은 이미 깨진지 오래다. 최근 들어서는 비용과 목적에 따라 다양한 지역으로 조기유학을 떠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중앙일보 프리미엄은 최근 불고 있는 탈(脫) 북미지역 조기유학 트렌드에 대해 알아보고자 필리핀, 호주 현지로 기자를 보내 생생한 현장 정보를 2회에 걸쳐 전달한다.

-왜 필리핀으로 가나?

지금까지 필리핀은 저렴한 유학 비용 때문에 경제적인 부담을 줄이고자 하는 차선책으로, 또는 미국 유학을 위한 어학 준비 경유지 목적의 유학지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2004년도 타임지 선정 대학 순위에서 필리핀 국립대학인 UP대학과 라샬 대학이 서울대학교도 들어가지 못한 세계 100위권 대학에 선정되면서 새로이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이런 추세에 맞춰 최근 들어서는 필리핀으로 떠나는 한국 조기 유학생이 급증하고 있다. 필리핀 마닐라에서 만난 김승재(40) 한비 문화교육원 원장은 "필리핀 현지의 한국인 유학생 수가 1만여명이 넘는다"며 "특히 최근 2년 사이에 많은 학생들이 오고 있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대교 글로벌의 박진용(36)이사는 "한국 유학생들이 자꾸 늘어나자 필립 아카데미, 그로턴 스쿨 등 미국 동부 명문 사립고들은 교육적 다양성 확보를 위해 매년 5명 정도만 한국 학생들을 선발하면서 경쟁이 치열하다"며 "이 때문에 최근 들어 필리핀 등 아시아 지역 국가들이 미국 명문대학 유학 및 국내 특목고 진학을 위한 전략적 요충지로서 떠오르고 있다"고 진단했다.

-개인교습식 영어 교육 받고, 필리핀 영어 강사의 발음 수준도 높아

필리핀 유학에 대해 한국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의 가장 큰 걱정은 '타갈로어'라는 필리핀 모국어로 인한 영어의 발음 문제다. 필리핀에서의 영어 공부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보기 위해 마닐라 시에 위치한 Y 어학원을 방문, 교사와 학생들을 만나 보았다. 50개의 개인 교습실로 이뤄진 학원 운영방식은 한국의 그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우선, 현지 교사와 학생이 1:1 개인교습 형태로 하루 4~6시간 영어 수업을 한다. 이후 4~6명의 그룹 수업과 수학 등 일반 교과목 수업이 진행된다. 2주 단위로 평가 시험을 실시한 후, 학생별로 말하기.쓰기.듣기에 대한 교정을 개인교습 형태로 진행하는데, 북미 지역 교습비의 1/20 정도의 저렴한 비용(시간당 4,000원 수준)으로 수업한다. 조기 유학생 최동민(중2)군은 "유학 3개월 만에 필리핀 현지 국제학교에 입학 허가를 받을 정도로 단기간에 영어 실력이 늘었다"며 "필리핀 선생님들의 영어 발음도 매우 좋아 수업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 진학의 전략적 요충지로 활용

필리핀의 국제학교와 명문 사립 학교들을 취재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이미 필리핀을 전략적 요충지로 활용, 하버드 대학을 비롯한 미국 명문 대학으로 입성한 한국 학생들이 있다는 것. 마닐라에 위치한 브렌튼 스쿨과 ISM 마닐라 등 국제학교에서는 고등학교 2학년부터 SAT(미국 대학 수학능력시험)를 준비, 다수의 미국 명문대 합격자들을 배출하고 있다. ISM의 경우 올해 예일대학교 3명, 브라운 대학교 6명을 포함 MIT.프린스턴.콜롬비아 등 아이비리그 명문 대학에 다수의 합격자를 배출했다. ISM마닐라를 졸업하고 하버드 대학에 입학허가를 받은 이경호군은 "필리핀 국제학교는 한국의 고등학교 보다 해외에서의 학교 지명도가 높은 편이다. 수학 등 교과목 수업이 쉬워 학업 성적을 올리기 쉽고 경쟁이 적어 사회 봉사 활동이나 과외활동을 체계적으로 준비할 수 있었다"며 "오히려 미국 유학보다 유리한 것 같다"고 말했다.

현지 학교 취재차 방문한 어셤션 스쿨(Assumption Antipolo)은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오랜 전통과 교육 과정, 과외 활동 프로그램 수준이 미국 명문 사립학교 못지 않다는 평을 받는 필리핀 명문학교다. 학교내 기숙시설은 물론, 다양한 체험 학습장을 갖추고 있는 이 학교 재단은 유럽.프랑스.스페인.영국 등 세계 100여개 국가에서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前총장이며 현 필리핀 아로요 대통령의 스승이기도 한 루스 로사리오 수녀는 "아로요 대통령 뿐 아니라 스페인 학교에서 벨기에의 현재 여왕도 졸업한 명문 학교"라며 "최근 한국 유학업체와 제휴, 한국 유학생들의 단기유학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전하고 쾌적한 기숙하우스 운영 가능

필리핀 유학을 고려할 때 불안한 점 중에 하나는 유학생들이 지내게 될 현지 기숙하우스다. 한국의 10분의 1수준인 국민소득과 안전성 문제에 대한 불안감, 차를 타고 지나면서 보이는 낙후된 환경을 보면서 주거 문제가 어떨지 궁금했다. 그러나 마닐라 중심가에서 40분 정도 차로 이동한 후 방문한 알라방 지역에 도착하면서 기자의 우려는 말끔히 사라졌다. 우리의 분당 신도시와 같은 신흥 부촌지역인 알라방은 주변의 야자수와 커다란 정원, 수영장이 딸린 대저택 등 마치 미국 캘리포니아나 캐나다 밴쿠버에 온 듯한 착각을 들게 했다. 주거지역 입구에는 사설 경비원들이 철저히 신분증을 검사했고, 이동 내내 사설 순찰을 도는 경비원들을 만났다. 이곳에서 기숙하우스를 운영하는 이익재씨는 7개의 큰 방과 정원, 수영장까지 딸린 고급 개인 주택을 학생들의 기숙사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씨는 "학생 2~4명이 한 방을 사용하는데 학원에서 돌아온 학생들을 상대로 개인교사가 밤늦게까지 개별 지도한다"며 "3명의 필리핀 현지인이 청소. 빨래 등 학생들의 뒷바라지를 하고, 한국인 가정부가 직접 한식을 제공하고 있어 불편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 인터뷰 - 마닐라 야베스어학원 수석교사 Maricel Quinto

Q.현재 공부하고 있는 한국 학생 수는?

A.현재 50개의 개인교습실에서 200명 정도의 한국 학생이 공부하고 있다.

Q.필리핀 유학의 장점은?

A.개인별 맞춤학습이다. 2주 단위의 평가 시험을 통해 학생별로 취약한 부분을 개인지도한다. 또, 한 강사가 여러 영역을 가르치는 미국식 교육에 비해 쓰기.말하기.듣기 등 부문별 전문 강사 시스템도 강점이다.

Q.교사들의 수준은?

A.대부분의 교사들이 UP, 라샬 같은 필리핀 명문대 졸업생이다. 영어교육 전공자들이 많고, 기타 다양한 전공자들이 영어 뿐 아니라 일반 학과목도 영어로 강의한다. 대부분 2년 이상의 강의 경험자다.

Q.한국의 학부모들이 영어 발음에 대한 우려가 많은데?

A.인터뷰를 통해 정규대학 졸업자 중 우수 강사만 선발해 대부분 표준 발음을 사용한다. 2주 단위로 북미 원어민 강사들을 초빙해 별도의 강사 발음교육도 진행, 영어 발음에 대한 문제는 없다.

Q.IBT TOEFL 준비는?

A.IBT TOEFL에 필요한 말하기와 쓰기를 개인별로 집중 지도하고 있고, 매주 금요일 별도의 IBT TOEFL 과정을 개설해 운영하고 있는 등 철저히 준비하고 있다.

◎ 인터뷰 - 최동민(14) 학생

Q.간단히 자기소개를 하면?

A.서울 서대문에서 필리핀으로 온지 3개월된 유학생이고, 현재 중학교 2학년이다.

Q.필리핀에서 영어 공부한 소감은?

A.말하고 듣고 쓰는 일반적인 영어 실력은 많이 늘었다. 3개월 만에 희망하는 국제 학교에 입학 허가를 받았을 정도다.

Q.필리핀 선생님들에 대해 평가한다면?

A.학원에서 가르치는 선생님들의 발음은 미국인과 별 차이가 없을 정도다. 또 상당히 꼼꼼하고 열정적으로 가르쳐 줘 만족스럽다.

Q.하루 일과는?

A.오전 8시에 학원에 나와 두시간 영어 개인 교습을 받고 10시부터는 수학 개인 교습을 받는다. 오후에는 2시간의 영어 그룹 과외와 2시간의 개인교습을 또 받는다. 저녁에는 기숙하우스에서 학과목이나 문법에 대한 개별학습을 한다.

Q.필리핀 유학의 장점은?

A.일단 미국이나 캐나다에 비해 저렴하다. 또 하루 4시간 이상의 개인 교습을 통해 단기간에 영어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되는 게 가장 큰 장점인 것 같다.

Q.앞으로의 계획?

A.필리핀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미국 대학으로 진학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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