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계층 통한 정치·사회 풍자|국제연극제 참가 초연극『술래잡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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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사회로부터 외면 당한 사람들의 삶은「살아도 죽은 목숨」이다. 이들에게 남아있는 것이 있다면 한 조각 빛 바랜 추억뿐이다. 상처받은 가슴을 깨어져버린 희망의 한 자락으로 감싸며 하루하루를 지탱해 가는 이들이 어떻게 부서져 내리는가를 보여주는 극단 작업의『술래잡기』가 7∼16일 문예회관 소극장에서 공연된다.
서울국제연극제를 통해 초연 되는 작품들 가운데 첫 번째로 무대에 오르는『술래잡기』는 작년 대한민국연극제에서『어느 족보가 그 빛을 더하랴』로 정식 데뷔한 극작가 조원석씨(41)의 두 번째 작품.
무대는 변두리 달동네의 어느 하숙집.
여기에는 단 한번 보궐선거를 통해 국회의원에 당선됐으나 정치적 변동으로 6개월간의 의원생활에 그친 후 줄곧 6번이나 낙선한 전직의원, 변두리동네 스탠드바에서 노래부르는 가수, 위장 취업해 노동운동을 펴다가 수배자가 된 대학생, 근대화 역군으로 자처하다 부실공사의 책임을 뒤집어쓰고 복역까지 한 전직 건설회사원, 분단의 깊은 상처로 남편과 결별한 주인 할머니, 진실만을 주장하다 무능사원으로 낙인찍힌 종합상사 만년계장 등이 모여 산다.
사회로부터 외면 당하는 이들이지만 그래도 꿈이 있다. 언젠가 국회의원이 돼 국민을 위해 바른 경륜을 펴 보이겠다는 꿈, 중앙무대에 진출해 일류가수가 되겠다는 꿈, 노동자가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이상을 실현시키겠다는 꿈들이 그들의 초라한 일상을 버티게 해준다.
그런 이 집에 한 장의 삐라가 날아들면서 하숙생간의 이해와 사랑이 깨어져 간다.
「간첩신고 3천만 원, 좌경용공분자 1천만 원‥‥」. 1천만 원이 있으면 뭔가 달라질 것 같은 막연한 기대 속에 이들의 보이지 않는 술래잡기가 시작되고 끝간데 모르는 불신과 암투 속에 결국 하나 둘 하숙집을 떠나간다는 내용이다.
『사회에서 소외당했거나 응어리진 사람들을 통해 이 시대의 정치·사회현실을 풍자해보고자 합니다.』
연출자 길명일씨(44)는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코믹터치로 이끌어감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웃음 속에서 우리의 현실을 반추해보도록 시도했다고 한다.
『산불』이후 5년만에 연극무대를 다시 찾는 중진연기자 최선자씨(47)가 하숙집 할머니로 등장, 열연하며『밤에만 나는 새』『포로수용소』등에서 역량을 보여준 정재진씨(35)가 전직국회의원으로 분해 그간 다져온 기량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홍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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