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섭 뒤에 '문희상 - 모리'라인 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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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팩스와 서신, 인편 접촉=양 연맹 관계자들에 따르면 문 전 의장은 15일 일본 측과 접촉을 시작했다. "일본의 수로 측량 계획으로 불거진 외교적 마찰이 지속돼선 안 된다"고 했다. 17일 모리 전 총리에게 "우선 일본이 먼저 수로 측량 계획을 철회하는 것이 사태 해결의 첩경"이라는 편지를 보냈다. 사안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점을 감안해 팩시밀리를 이용해 우선 편지 내용을 알렸다.

18일 인편으로 편지를 전달할 때엔 "먼저 일본 측이 계획을 철회하면, 한국도 독도 부근 수역의 한국식 지명등재 시기를 연기하겠다. 추후 동해 EEZ 관련 협상을 따로 갖자"는 내용의 구두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는 한.일 양국의 마지막 타협안이 됐다.

문 전 의장은 일본 측에 이 같은 제안을 하기에 앞서 외교 당국과 협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모리 전 총리는 21일 답신을 보내왔다. "(일본) 외무성에 알려 조치했으며, 야치 차관이 서울에 가도록 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이와 함께 모리 전 총리는 "오늘부터 분위기가 바뀔 것이다. 서울에서 문 전 의장이 많이 노력해 달라"는 구두 메시지를 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 전 의장은 즉각 유명환 외교부 1차관에게 연락해 이 같은 내용을 알렸다고 한 관계자가 전했다. 문 전 의장은 또 지난주 한국을 방문했던 일본의 민주당(야당) 소속 유력 정치인과도 만나 일본 측의 협조를 요구했다. 그는 귀국 후 모리 전 총리를 만나 한국의 입장을 재차 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 "막후 채널 열려 있어야"=주일 대사를 지낸 한 인사는 23일 "노무현 정부 들어 정치권의 세대교체 등으로 한국과 일본 간 막후 채널이 사실상 없어졌다"고 말했다. 첩첩이 쌓여 있는 한.일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하기 위해선 하루속히 이런 채널이 복원될 필요가 있다는 취지였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권은 '문희상- 모리' 라인의 구축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분위기다. 두 사람의 비중이 정부 당국 간 협상을 보다 원활하게 해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들이다. 모리 전 총리는 고이즈미 총리를 계보원으로 거느렸던 대표적 지한파(知韓派)다.

두 사람은 최근까지 일본과 한국에서 수차례 만나 우의를 다졌다. 문 전 의장은 "과거사에 연연하지 않고 양국 외교에 실질적 보탬이 되도록 하겠다"는 입장이다. 박정호 한.일 의원연맹 사무총장은 "이번 협상 타결이 사실상 미봉책에 불과한 만큼 추후 협상 과정에서 국익에 도움이 되도록 의원 외교채널을 통해 측면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정욱 기자

◆ 문희상과 모리는 누구=모리(69) 전 총리는 일본 정치에서 선 굵은 보스형 인물로 꼽힌다. 자민당 최대 파벌인 '모리파'를 이끌고 있어 영향력이 크다. 고이즈미 총리도 그의 계보원이었다. 자민당 내 주요 당직을 거친 뒤 2000년 총리를 지냈다. 1년에 수차례 한국을 방문한다. 문희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 밑에서 정치를 시작한 3선 의원이다. 노무현 정부 초대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냈다. 16대 국회에서 한.일 의원연맹 안보외교분과 위원장을 맡는 등 줄곧 일본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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