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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 휴대폰 감청… 국정원, 합법화 추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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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국가정보원.검찰.경찰이 휴대전화와 인터넷폰(IP) 등에 대한 합법 감청을 할 수 있도록 통신사업자들의 협조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통신비밀보호법(통비법) 개정안이 국회 법사위에 상정된 것으로 확인됐다.

국회 법사위는 24일부터 법안심사소위를 열어 여야 의원들이 제출해 놓은 5건의 통비법 개정안을 본격 심의한다. 여기에는 국정원의 제안으로 '전기통신 사업자의 협조의무'(제15조 2항)를 강화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여권 관계자는 23일 "이 개정안은 휴대전화-휴대전화 간 통화내용의 감청을 가능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전했다. 국정원 관계자는 이와 관련, "국내에 들어온 외국인 75만 명 중 안보 위협 세력과 산업스파이, 국제 범죄인, 테러분자들이 첨단통신으로 각종 정보를 주고받고 있다"며 "하지만 우리는 법원에서 휴대전화 감청 승인.허가를 받아도 감청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통신업체들이 감청 관련 장비.기술을 갖추지 못한 데다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협조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미국.영국.독일처럼 전기통신 사업자들의 감청 협조를 의무화할 계획이다. 미국 방식을 따를 경우 통신업체들은 이동전화 교환기에서 감청 대상의 통신회선을 따내 수사기관에 연결해 줘야 한다. 업체들은 ▶감청 장비.시설.기술 제공 ▶통신사실 확인 자료 제공 ▶통신 장비.시설.기술 개발시 정보통신부가 정한 기준 채택 등의 의무를 갖는다. 대신 정부는 소요 경비를 예산으로 뒷받침한다. 국정원은 총 140억원을 예상하고 있다.

휴대전화 감청 실시 시기는 2008~2009년이 유력하다. 그러나 SK텔레콤.KTF.LG텔레콤 등 이동통신 업체들은 고객들의 반발과 이탈을 우려해 반대하는 입장이다.

이양수 기자

"사생활 침해, 정치 악용 우려" 반발 거셀 듯

수사기관이 휴대전화 간의 통화내용을 손쉽게 합법 감청하도록 하는 방안이 추진돼 여론의 거센 반발을 예고하고 있다. 국정원의 뜻대로 '통신사업자 협조 의무'가 대폭 강화되면 휴대전화와 인터넷폰 역시 '도.감청 안전 지대'가 될 수 없다.

법 개정안의 명분은 국내를 무대로 활동하는'거동 수상자'들을 감시하기 위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수사기관이 감청 허용 대상이 아닌 다른 전화번호를 끼워넣어 정치적인 목적으로 악용할 가능성이다. "현 정부 출범 이후 불법감청은 단 한 건도 없다"는 게 국정원의 주장이나 국민적인 불신은 여전하다.

시민단체는 부정적이다. 지난해 7월 법무부가 통비법 시행령을 고쳐 이 조항을 넣으려고 할 때 "국민의 통신자유를 보장하는 모법의 취지에 어긋난다"며 강력 반발했다. 법무부는 결국 두 손을 들었다.

정치권도 찬반 양론이 엇갈린다.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은 지난해 11월 감청 행위를 대폭 제한하고 국회의 감시.통제를 강화하는 내용의 통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정원 측은 여기에 '협조 의무' 강화 방안을 끼워넣었다. 그래서인지 정 의원 측과 권영세.공성진 의원은 "국가안보와 중대 범죄 수사에 한해 첨단통신 감청을 허용하는 게 필요하지 않으냐"고 말했다.

반면 열린우리당 장영달.정의용 의원은 국민 의견 수렴, 국정원 개혁을 선행 조건으로 내세우며 반대 입장을 보였다. 지난해 터진 안기부 불법 도청테이프 유출사건으로 우리 사회 전체가 도.감청 문제에 강한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국민 여론을 설득하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이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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