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드는「동맹보스」"이제 그만"|한남규 워싱턴특파원 현장진단 3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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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88년 미국의 이슈는 방위비 분담이다. 세계자유를 수호하고 강대국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 미국은『어떠한 부담도 짊어질 것이며 어떠한 대가도 지불하겠다』고「존·F·케네디」대통령은 미 국민과 세계에 선언했었다. 이제 미국은「부담」과「대가」를 분담이란 표현으로 벗어나려 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방위비 분담 얘기는 진정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국세정치·군사·경제상황 변천에 따라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와 미일안보체제 생성이후 각종형태의 논의로 계속돼온 문제이긴 하다. 그리고 지난해 이 문제가 다시 거론됐을 때만 해도 동맹국들은 올해 선거가 지나가고 나면 사라지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은 얘기가 다르다. 행정부·의회 등 워싱턴의 분위기가 그런 게 아니다. 절박한 표정들이다.
한 예로 하원만 하더라도 군사위에「방위비 분담 패널」이 구성되고 예산위원회에는「국방 및 국제문제 특별위원회」가 생겨나고 수십 차례 공청회를 열어 전문가의 견해와 권고를 청취한다.
지난 6월 21일 개최된 특별위원회의「장기국방지출공청회」가 그 견본의 하나다.
최근 미국 쇠퇴학파에서 가장 각광을 받고 있는「폴·케네디」예일대교수를 비롯해「윌리엄·카우프먼」 하버드대교수「에드워드·라트워크」조지타운대학 국제전략문제연구소 연구원 등 군사역사 및 국방관계의 쟁쟁한 학자들이 증인이다.
「빅터·파지오」위원장은 미국의 적정 국방비규모, 재정 제 약속에서의 군사정책 우선 순위, 장기 국가안보 프로그램을 위한 군사·외교·국내정책의 수립은 당파를 초월하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데니·스미스」의원(공)은 현재 미국은 과거와 다른 국제환경에 처해있다고 말하고 그 예로 소련의 변화, 우방의 부강, 새로운 무기기술, 핵 억지력의 성격변화 등을 열거했다.
「폴·케네디」교수도 2차대전후 국제질서가 변하고 있다면 미국은 당연히 새로운 세계질서에 맞춰 조정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구체안으로 첫째, 미국의 일방적인 세계방위의무 조정을 내세웠다.『급작스런 철수까지는 말하지 않더라도 21세기초까지 동아시아에 대한 개입의 성격을 재고해야 한다』고 말한 그는「아시아인을 위한 아시아」의 자세를 촉구했다.
특히 중국이 초 강국으로 성장해가고 일본이 재정적인 초강대국이며 소련의 대 극동 영향력이 약화돼가고 있고, 특히 한국이 경제와 어쩌면 군사 면에서도 강하다는 점을 들어『이런 상황에서 미국 개입이 21세기 내내 계속되어야 하느냐는 것은 토론의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두 번째, 그의 조정방향은 미국의 경제력·생산성·성장을 늘림으로써 장기 외교정책과 방위정책의 요체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핵심인 세 번째는 넓은 의미의 방위비 분담으로서 일본·중국과 지역안보 조약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동아시아 안보확보 방안이 무엇인가』『한국과 필리핀의 지역안보를 단순히 미국에만 의존할 것인가』『미국을 도울 수 있는 게 무엇인가』를 일본·중국과 협의, 이를 달성한다는 것이다.
군사문제전문가「제임스·체이스」는 아틀랜틱지 기고에서 유럽주둔 미군의 철수문제를 다뤘다. 인구 3억7천만명의 NATO가맹 유럽 우방국들이 전체 국방예산 3천1백억 달러 중 절반에 가까운 1천3백40억 달러를 유럽에 대한 재래식 방위비로 쏟아 넣는 것을 외면하고 연간 방위비로 8백30억 달러만을 부담하고 있다고 그는 지적한다.
쌍둥이 적자로 허덕이는 미국으로서 35만 명의 군인을 유럽에 주둔시킨다는 것이 힘에 부친다는 얘기다.
미국의 쇠퇴를 경고하는 학자「데이비스·캘리오」존스 홉킨스대 교수도 유럽주둔군을 줄이라고 주장한다. 현 10개 사단 중 6개 사단을 철수하면 연간 최소한 3백억 달러는 절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유럽철군이론은 새로울 게 없다.「아이젠하원 대통령은 물러난 직후『백악관 8년 동안 유럽철군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왔다』고 말했지만 30년이 자난 지금까지 35만 명이 그대로 남아있을 뿐이다. 70년대 초「마이크·맨스필드」상원 원내총무도 주장했고, 84년「샘·넌」상원의원은 유럽이 자체병력을 늘리지 않으면 5년 내 9만 명의 미군을 철수시키자는 법안까지 제출했지만 부결됐다.
그러나 방위비 부담을 거론하고 있는 미국의 얘기는 절실하다.「케네디」교수는 미국의 경제형편이 바뀌었다고 설명한다.
60년대 초부터 성장률이 기울어져 왔고, 세계GNP에서 차지하는 미국의 비중이 30여 년에 비해 격감되고, 전략산업을 포함한 주요산업들이 붕괴되고, 외국유학생 출신이 아닌 미국인엔지니어와 과학자가 줄어들고, 채권국에서 채무국으로 반전됐으며, 달러화 가치를 유지하기 위한 외국중앙은행에 대한 의존도가 커지고 있는 점들을 길게 열거하고 있다.
『변하지 않은 것은 NATO·일본·한국·필리핀·호주·중동에 대한 공약과 의무』라고 말하는 그는「안보공약과 능력의 갬을 축소하는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것이라고 오늘의 미국 자세를 실명한다.
지난 1일 하원군사위 방위비 분담 패널은 청문회의 결론으로『미국은 동맹관계의 보스가 되어서는 안되며, 동맹은 미국이 보스가 되기 위해 더 많은 방위비를 지불하도록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쐐기를 박았다.『유럽과 극동에서 동일한 적과 맞서고 있는데 미국과 동맹의 위협인식이 다른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한 패널은『동맹은 미국인식이 사실에 근접한 것이라면 방위비 지출을 증가하고, 반대로 동맹 인식이 사실에 가깝다면 미국이 주둔군을 포함한 방위비 지출을 줄여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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