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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과문화

아티스트의 뻔뻔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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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1991년 데뷔 무렵에는 어떤 지방 갤러리의 작품 전체를 훔쳐 'Another Fucking Readymade'라는 타이틀로 전시회를 열어 암스테르담에서 체포됐고, 93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는 그에게 허용된 전시공간을 광고 에이전트에게 팔아넘겨 스키아 파렐리라는 새 향수 제품을 선전하는 장소로 쓰게 했을 정도다. 얼마 전 밀라노에서는 너무나 진짜처럼 보이는 세 어린이의 목을 나무에 매달아 놓은 'Hanging Kids'라는 작품으로 밀라노 시민들을 경악하게 했는데 정의감 넘치는 한 시민이 아이들을 구출해 더 화제가 됐었다. 그 이후 밀라노 당국은 그의 설치미술이 정말로 예술작품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그 사이 미술시장에서 카텔란의 가치는 더욱 치솟아 그가 예전에 500만원에 팔았던 '천장에 매달린 박제된 말 작품(트로츠키의 발라드)'이 뉴욕 경매장에서 20억원 이상의 가격으로 되팔리는 기록을 세웠다.

이제 유명한 아티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경천동지할 만한 뻔뻔함을 구비해야만 하는 시대가 됐다. 국내에서는 아티스트 낸시 랭이 그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싶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어떤 남자 아티스트에게 스커트를 사 달라고 조르는 여자 아이에 불과했다. 2004년 봄 낸시 랭을 처음으로 언론에 소개한 칼럼니스트가 공교롭게도 필자인데, 당시 나는 애교 어린 자태로 폭탄주를 만들며 4.19가 뭐냐고 묻는, 그러면서도 자신을 아티스트라고 소개하는 그 뻔뻔함에 고무돼 '애교의 여왕, 낸시 랭'을 이런저런 매체에 소개했다. 자신의 속물성과 나르시시즘, 그리고 무지를 뻔뻔하게 노출시키는 전략으로 사람들에게 일종의 해방감을 선사하는, 애교의 여왕 낸시 랭에 대해 말이다. 그 후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유명해져 지금은 자신 이름의 의류 브랜드를 론칭하는가 하면 TV 광고에도 나올 만큼 대중적으로 인기가 높아졌다.

한때는 그 뻔뻔함에 기가 질려, 어쩌면 그 말마따나 '동생이 너무 잘나가니까 배가 아픈 나머지' 다시는 그를 안 볼 것처럼 굴었던 때도 있었지만 나는 여전히 그를 지지한다. 어떤 아티스트가 교양 있는 TV 프로그램에 나가 점잖은 국회의원에게 '여자 나오는 술집에는 안 가느냐'고 묻겠는가? 그가 의도했건 안 했건 그 자체가 이 시대의 부조리를 조롱하는 하나의 재미난 팝아트 작품이다.

하지만 더 오래가기 위해서는 그 이상이어야 한다. 앞서 말한 카텔란이 사람들의 악평 속에서도 지난 10년간 계속 성장한 이유는 그 자신이 돈을 밝히기보다는 돈밖에 모르는 미술계의 허위를 재치있게 조롱했기 때문이다. 격을 높인 디즈니랜드와 결코 다르지 않은 포스트모던 미술관들을 풍자하기 위해 웃기는 파블로 피카소 마스크를 쓴 배우로 하여금 뉴욕현대미술관 정문에서 사람들과 악수하고 사진을 찍게 했던 예가 대표적인 경우다. 그러면서 그 자신은 잘못된 갤러리(Wrong Gallery)라는 비영리 예술공간을 만들어 동료 예술가들의 전폭적 지지를 얻었다. 정리해 보자면 카텔란은 "사업을 잘하는 것이 최고의 예술이다"고 말한 앤디 워홀의 철학을 따르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사업이 아니라 자신의 자아상을 주의 깊게 확장시켜 왔던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낸시 랭이 그 이상인지는 전혀 모르겠다. 그는 자아상이 아니라 사업을 확장하고 있고 동료들의 지지를 얻지 못한 채 앤디 워홀의 캠벨 수프 따위를 패러디한 작품을 내놓고 있을 뿐이다.

김경 '바자' 피처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