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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너무 낮은 수준의 합의, 비핵화 갈 길이 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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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센토사의 대담판을 앞두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자신의 ‘번호판 없는 벤츠’를 타고 야행(夜行)에 나섰다. 6월 11일 오후 9시(이하 현지시간)쯤 호텔을 떠난 그의 전용차가 향한 곳은 마리나 베이샌즈 호텔이었다. 57층 높이의 호텔 스카이 파크 전망대에서 싱가포르의 야경(夜景)을 내려다보며 그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김 위원장은 싱가포르에 도착한 뒤 극도로 말을 아꼈다. 하지만 ‘말’보다 ‘발’을 봐야 할 때가 있다.

절반 성공에 그친 북·미 정상회담 #적대관계 70년 만의 회동은 의미 #CVID, 비핵화 시간표 빠져 아쉽다 #비핵화 문 열었으나 앞길 첩첩산중 #폼페이오-김영철 회담서 완성해야 #트럼프 “북, 비핵화 조기 착수” #주한미군 철수 거론 위험하고 #한·미 연합훈련 중단도 불안해 #정부, 안보 쇼크 대비책 마련하라

그는 지난해 12월 초 영하 20도를 밑도는 날씨에 백두산 천지(天池)에 올랐다. 나중에 그의 ‘천지구상’은 한반도 정세의 대반전을 여는 신년사와 평창 겨울올림픽 참여로 나타났다. 뭔가 큰 결심을 할 때 높은 곳에 오르는 습성이 있는 김 위원장이다. 김 위원장이 한밤의 외출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온 시간은 밤 11시21분이었다. 동생 김여정이 반보 정도 뒤에서 밀착 수행했다. 본지 기자가 호텔 로비에서 목격한 김 위원장의 표정은 결단을 마치고 온 사람처럼 단단해 보였다고 한다.

6월 12일 오전 9시4분.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마침내 얼굴을 마주 대했다. 내일 당장에라도 전쟁을 할 듯이 요란스럽게 핵 버튼의 크기를 자랑하던 두 정상은 12초간 손을 꼭 잡았다. 이미 만남 자체가 ‘세기적’이라 평가받아 왔다. 그런 두 정상이 단독회담-확대회담-오찬을 거치고 오후 1시49분 성조기와 인공기가 나란히 걸려 있는 테이블에서 회담 합의문에 서명했다. 합의문과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은 “굉장히 포괄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며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할 수준으로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김 위원장이 “세상은 아마 중대한 변화를 볼 것”이라고 한 대목은 압권이었다.

그러나 이번 합의문은 오히려 비핵화에 이르는 길이 얼마나 먼지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었다. 이번 협상의 성공조건은 애초 뭐였나. 하나씩 복기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라는 문구가 과연 합의문에 담길 것인가.

둘째, 북한이 예컨대 비핵화를 2020년까지는 완료하겠다는 식으로 ‘시간’을 약속할 것인가.

셋째, 북한이 미국에 실질적 위협이 되는 핵탄두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폐기·반출하는 등의 선제적 행동을 취할 것인가.

이상 세 가지 질문이 핵심이었다. 하나같이 김 위원장의 결단 영역에 속하는 문제였다. 김 위원장이 비핵화의 세 가지 조건 중 어느 한 가지만이라도 통 크게 결단한다면 남·북·미 종전선언, 평화협정 체결, 북·미 수교 같은 체제보장 로드맵도 속도를 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세계가 북·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와 체제보장을 ‘빅딜’로 인식한 이유다.

그러나 합의문은 이런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이날 두 정상은 4개 항에 합의했다. 북·미 관계, 평화체제, 비핵화로 이어지는 4·27 판문점 선언과 같은 구조다. 비핵화와 관련한 표현은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선언을 재확인하며, 북한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향한 작업을 할 것을 약속한다”(3항)는 것이었다. 나머지 3개 항은 ▶새로운 북·미 관계를 수립하기로 약속하고(1항)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노력하며(2항) ▶전쟁 포로·전쟁 실종자들의 유해를 송환 및 수습한다(4항)는 내용이다. 기대보다 훨씬 낮은 수준의 합의다.

비핵화가 세 번째 순위로 밀린 점, 무엇보다 CVID라는 문구가 들어 있지 않은 점이 아쉽다. 지난 4·27 판문점 선언에 명시된 ‘완전한 한반도의 비핵화’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여전히 추상적 목표로만 남아 있게 된 상황이다.

지난 24년간 한반도에는 세 번의 공인된 핵위기가 있었다. 북한이 1993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특별사찰 요구를 거부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자 미국이 94년 6월 영변 핵시설 폭격을 검토한 게 1차 핵위기다. 1차 위기는 94년 10월의 제네바 합의로 넘겼다. 북한이 핵시설을 동결하면 보상해 주는 내용이다.

2차 핵위기는 2002년 북한이 고농축우라늄 개발을 시인하면서 찾아왔다. 제네바 합의는 휴지 조각이 되고 새로운 9·19 공동성명(2005년)이 탄생했다. 북한이 모든 핵을 포기하되 북·미 관계를 정상화한다는 내용을 담은 역사적 합의였지만 역시 백지화된 지 오래다.

지난해 북한의 핵실험과 ICBM 개발 완성은 세 번째 핵위기의 절정이었다. 하지만 이번 합의문은 얼핏 9·19 공동성명 수준에도 이르지 못했다.

그렇다고 이번 회담을 실패한 회담이라고 속단할 수만은 없다. 무엇보다 적대관계의 두 정상이 70년 만에 만난 것 자체가 역사적인 사건이다. 6·25 전쟁 이후 수십년간 이어진 적대관계를 끝내기 위한 첫걸음은 떨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 후 합의문에 들어 있지 않은 내용도 공개했다. ‘완전한 비핵화’와 관련해 김 위원장이 “북한 미사일 엔진 실험장 폐쇄를 약속했다”는 대목이 그중 하나다. 체제보장에선 “조만간 실제로 종전선언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비핵화 및 체제보장의 빅딜을 놓고 논의 자체는 상당히 깊숙하고 광범위하게 이뤄졌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평양에) 도착하면 (비핵화) 프로세스를 전적으로 빨리 시작할 것”이라고 했다.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선 “김 위원장이 모든 곳을 비핵화할 것”이며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전면적 비핵화 프로세스의 개시를 장담했다.

두 정상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의 후속 회담을 최대한 이른 시기에 개최하기로 했다. 후속 회담에서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로드맵, 총론적 성격의 북·미 정상 합의문에 대한 각론이 나오기를 다시 한번 기대해본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회견에서 “한·미 연합훈련을 중단하겠다”고 밝힌 것이나 “주한미군은 지금 논의에서 빠져 있으며 미래 협상을 봐야 한다”고 한 부분은 우려스럽다. 아직 비핵화의 구체적인 조치 이행에 돌입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나온 이런 돌출발언은 우리로선 안보 약화로 직결될 수 있는 중요한 사안이다. 우리 정부의 단호한 대응이 필요한 부분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 제재는 비핵화가 더 이상 우리에게 위협이지 않을 때 해제할 것이다. 지금 현재로서는 대북제재를 유지한다”고 밝힌 것은 다행이다. 자칫 손에 잡히는 결과 없이 대북제재를 완화하면 안보 상황만 약화시킬 뿐이다. 우리 정부가 책임지고 안보 쇼크에 대비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비록 오늘 회담이 기대수준에 미치지 못한 측면은 있으나 일단 비핵화의 문은 열렸다. 그러나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도 먼 게 사실이다. 우리는 다시 한번 김 위원장의 비핵화 결단을 촉구한다. “세상은 아마 중대한 변화를 볼 것”이라는 그의 말은 이제 전 세계인이 기억하는 약속이 됐다.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여기까지 오는 길이 그리 쉬운 길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우리의 발목을 잡는 과거…모든 것을 이겨내고 이 자리까지 왔다”는 말도 했다. 이제 김 위원장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비핵화에 나서기를 기대한다. 우리는 그가 싱가포르 야경을 보면서 다시 과거로 되돌아갈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으로 믿는다. <싱가포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