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화교' 바람 거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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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중국의 팽창주의를 불쾌하게 생각한 동남아와 남태평양 각국 주민이 현지 화교를 공격하거나 핍박하는 일이 빈발하고 있다. 특히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솔로몬 제도에선 최근 주민들이 차이나타운을 대대적으로 약탈하고 방화했다.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따라 반(反)화교 경향은 갈수록 거세지는 추세다.

◆ "총리선거에 중국 자금 유입"=솔로몬 제도의 수도 호니아라에 있는 차이나타운은 20일 현재 무정부 상태다. 현지 주민 1500여 명이 50여 개에 달하는 상점과 은행을 약탈.방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전체 건물의 90%가 불탔다. 이곳에 거주하는 1000여 중국인과 화교는 경찰서와 병원 등으로 몸을 피했다. 인근 호주와 뉴질랜드가 235명의 군경을 파견해 치안 유지에 나섰지만 주민 분노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약탈은 18일 시작됐다. 이날 총리에 당선된 스나이더 리니가 화교와 중국.대만으로부터 거액을 받아 금권선거를 했다는 야권의 주장이 제기되면서다. 화교와 대만 외교부는 금품을 제공한 적이 없다고 19일 해명했다. 중국 외교부는 이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솔로몬 방송(SIBC)은 이날 "경제의 70%를 점유하고 있는 화교가 정치권에까지 영향력을 확대해 솔로몬 제도를 중국 식민지화하려 한다는 게 주민들의 주장"이라고 보도했다.

◆ 동남아의 반중국 바람=지난달 필리핀 경찰은 500여 병력을 동원, 마닐라 차이나타운을 대대적으로 압수수색했다. 밀수품과 탈세 혐의를 찾는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현지 언론은 마닐라 상권의 80%를 화교가 장악, 필리핀 상인들의 생존이 어려워져 정부가 나섰다고 전했다.

지난달 초 인도네시아에서는 '중국인을 공격하라'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가 퍼졌다. 영부인 아니 밤방 유도요노 여사의 단말기에도 전해졌을 정도다. 인도네시아에선 최근 7년간 현지 주민의 폭행으로 화교 12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방화나 약탈을 당한 화교 상점이나 주택이 5000여 채에 이른다. 인구의 3%에 불과한 화교가 국부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데다 최근 정치자금 지원 등으로 영향력이 커진 데 대한 주민 불만이 커지고 있다는 게 정부의 분석이다. 2월에는 파키스탄에서 중국인 기술자 세 명이 현지 무장 게릴라들에게 피살됐다. 게릴라들은 "중국이 인프라 건설 지원 등을 이유로 영향력을 확대해 우리를 속국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 경제력 앞세워 팽창정책 지속=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는 5일 남태평양 국가 피지에서 열린 제1회 중국.태평양제도 경제 발전 협력 포럼에 참석, "앞으로 3년 동안 남태평양 지역 8개 국가에 20억 위안(약 360억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중국은 또 지난해 11월 베이징(北京)에서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10개 회원국이 참여하는 '신 아시아 안보 포럼'을 출범했다. 동남아에 대한 미국의 입김을 견제하고 자국의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서다. 그러면서 2010년 이전에 아세안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어 현재 1000억 달러 규모인 자국과의 교역 규모를 2000억 달러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경제로 동남아를 묶어 영향력을 늘리겠다는 포석이다.

홍콩=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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