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사설

역사적 북·미 담판 … 핵 없는 평화의 새날 밝아오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투숙 중인 싱가포르 세인트레지스 호텔에는 ‘세기의 담판’을 하루 앞두고 숨 막힐 듯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평화와 고요’의 섬 센토사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이 최고급 호텔에 진입하려면 싱가포르 경찰의 검문을 두 차례 받아야 하고, 정문에서 또 검색대를 통과해야 한다. 그렇게 어렵게 호텔 로비로 들어갔더니 평양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비핵화에 분명한 성과가 있길 기대 #김정은의 통 큰 결단 거듭 촉구한다

짧게 자른 ‘깍두기’ 머리에 검은색 양복, 김일성-김정일 초상휘장(배지)을 단 북한 경호요원(974부대원)들이 삼삼오오 진을 치고 있고 김영철 통일전선부장과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장 등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성 김 주필리핀 미국대사와 판문점에서부터 실무 협상을 계속해 온 최선희 외무성 부상은 이날 유달리 분주하게 호텔을 드나들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트위터로 성 김 대사와 최 부상의 실무 협의와 관련, “북한과 실질적이고 상세한 협의를 했다”고 트위터에 짤막하게 소식을 전했다.

사상 최초로 열리는 이번 북·미 정상회담은 여느 정상회담과 다르다. 보통의 경우 실무진이 의제의 95% 정도를 미리 합의하고 나머지를 정상이 만나 해결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거꾸로다. 95% 이상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직접 얼굴을 맞대고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회담의 관건은 미국이 요구하는 북한의 비핵화와 북한이 바라는 체제안전 보장 사이에서 어떻게 접점을 찾느냐다. 어제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거듭 “우리는 한반도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에 전념하고 있다”며 북한을 압박했다. 반면 북한 매체는 이번 회담 의제로 북·미 관계 수립, 평화체제 구축, 조선반도 비핵화 등 세 가지를 적시했다. 북한은 미국의 대북 적대 정책을 제거할 기회로 보는 것이다.

오늘 트럼프-김정은 회담은 오전의 단독회담, 오찬, 그리고 오후엔 주요 수행원이 참석하는 확대회담으로 진행된다. 성과가 좋으면 공동 성명을 발표하고 축하 만찬을 할 예정이다. 회담의 성패는 일찍 가려질 것이란 전망이 많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비핵화 진정성을 가늠하는 데 “1분 이내면 알아차릴 수 있다”고 장담하고 있다. 트럼프는 CVID 원칙의 문서화는 물론 핵무기 반출 등 가시적인 초기 비핵화 조치 실시, 그리고 비핵화 이행 시한까지 합의문에 못 박으려 할 것이다. 반면 북한은 이번 회담에선 비핵화의 큰 틀만 잡고 세부 사항은 추후 회담을 통해 해결하려는 전략으로 맞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회담은 상대가 있는 것이라 어느 쪽도 일방적 승리를 거두기는 어렵다. 그러나 비핵화는 북·미 모두 당위성을 인정하고 있는 만큼 분명한 성과가 있기를 기대한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김 위원장의 통 큰 결단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 북한을 위대하게 만들 단 한 번의 기회를 살려 핵을 버리고 정상국가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역사적 담판의 새날이 밝았다. 이번 회담의 성공으로 한반도에도 평화의 새날이 밝아오길 간절히 기원한다. <싱가포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