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호정의 왜 음악인가

서울대에 안 갔던 내 친구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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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호정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호정 아트팀 기자

김호정 아트팀 기자

피아니스트가 되려던 나는 1999년 입시를 보고 이듬해 대학에 입학했다. 내가 다니던 예고는 한 학년에 400명이었고 다른 고등학교와 마찬가지로 대부분 서울대 입학이 꿈이었다. 그런데 좀 이상한 변화가 있었다. 피아노나 바이올린을 정말 잘하는 친구 몇 명이 서울대를 안 갔다. 갈 수 있는 서울대에 안 가는 한국 사람은 그때 처음 봤던 것 같다. 그들은 대신 한국예술종합학교에 갔다. 줄여서 ‘한예종’, 그중에서 음악원이다. ‘대’가 아니라 ‘종’과 ‘원’으로 끝나는 학교, 1993년 문을 열고 불과 7년 된 학교에 간 친구들의 미래는 솔직히 잘 그려지지 않았다.

이달 7일 한예종 음악원은 개교 25주년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음악원 출신 첫 교수로 3월 임용된 피아니스트 이진상(37)은 말했다. “사람들이 처음엔 한예종이 학원인지 뭔지 반신반의했다.”

왜 음악인가 6/11

왜 음악인가 6/11

이번 기자간담회의 자료엔 2003년 이후 국제 콩쿠르에 입상한 졸업생·재학생 명단이 빼곡했다. A4 용지로 9장이고 총 651명이다. 피아니스트인 김대진 음악원장의 말처럼 “콩쿠르가 전부는 절대로 아니”지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한국 음악인들이 잘나진 것은 사실이다.

아마도 초창기 한예종을 선택한 학생들에겐 두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낭떠러지일지 모르지만 가보는 심정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될지 잘 모르는 길이었으니까. 하지만 한예종은 실패할지도 모르는 일을 우리가 해봐야 하는 이유를 증명하는 사례로 남았다.

93년 여러 사람을 끈질기게 설득해 한예종을 세운 음악학자 이강숙 총장은 “학교를 콩나물처럼 키워야 한다”고 자주 말했다 한다. 콩나물은 생각날 때마다 물을 계속 줘야 하고 그 물이 다 어디로 갔는지 허망해지기까지 한 식물이다. 이 총장은 또 “실패하더라도 성공할 때까지 한다”는 말도 반복했다고 한다. 명문대에서 이미 자리 잡은 좋은 교수들을 데려오려고 설득의 기술을 발휘했다. 이런 건 한국 사회의 기존 질서에 대한 반성 내지는 비판이 있어서 가능했다고 본다. 한예종 음악원이 무서운 학교로 자라난 동력이다. 이제 스스로가 고지에 오른 한예종 음악원은 어떤 혁신을 할 수 있을까. 좋은 학교가 된 한예종이 또 다른 명문대가 되지는 않을 수 있는 기점이 25주년일지도 모르겠다.

김호정 아트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