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피티로 덮인 ‘독일 통일 염원’ 담긴 베를린 장벽

중앙일보

입력

8일 밤 그라피티 아티스트 정태용(28)씨가 훼손하기 전과 후의 베를린 장벽. [연합뉴스]

8일 밤 그라피티 아티스트 정태용(28)씨가 훼손하기 전과 후의 베를린 장벽. [연합뉴스]

독일 베를린 시가 한반도 통일 염원한다는 뜻에서 서울시에 기증한 베를린 장벽이 그라피티(graffiti)에 의해 훼손됐다. 장벽 관리를 맡은 중구청은 수사 의뢰할 방침이다.

‘히드아이즈’라는 문화예술브랜드를 론칭한 그라피티 아티스트 정태용(28)씨는 지난 8일 밤 인스타그램에 서울 중구 청계2가 베를린 광장에 설치된 베를린 장벽에 스프레이로 그림을 그리는 자신의 모습을 찍은 사진을 올렸다.

10일 서울 청계천 베를린광장에 설치된 베를린장벽이 그라피티로 훼손돼있다. [뉴스1]

10일 서울 청계천 베를린광장에 설치된 베를린장벽이 그라피티로 훼손돼있다. [뉴스1]

정씨는 “전 세계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의 현재와 앞으로 미래를 위하여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태극 문양을 중심으로, 히드아이즈 패턴이 조화롭게 이뤄져 한민족의 이상인 뜻을 내포했다”고 설명했다.

2015년 10월 12일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개막한 독일-한국 교류 특별전 '독일에서 한국의 통일을 보다' 전시품의 하나로 베를린 장벽 실물이 세워져 있다. [연합뉴스]

2015년 10월 12일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개막한 독일-한국 교류 특별전 '독일에서 한국의 통일을 보다' 전시품의 하나로 베를린 장벽 실물이 세워져 있다. [연합뉴스]

정씨의 그라피티로 베를린 장벽 한쪽은 노랑, 분홍, 파란색 페인트 줄로 덮였다. 원래 서독 쪽 벽면으로 분당 당시 독일인이 남긴 이산가족 상봉과 통일을 염원하는 글과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깨끗했던 동독 쪽 벽면 역시 정씨가 남긴 여러 글이 적혔다.

2015년 당시 동독 쪽 베를린 장벽(위)과 10일 그라피티로 훼손된 후의 모습. [연합뉴스]

2015년 당시 동독 쪽 베를린 장벽(위)과 10일 그라피티로 훼손된 후의 모습. [연합뉴스]

정씨가 훼손한 베를린 장벽은 1961년 동독에서 제작한 것이다. 1989년 독일이 통일되면서 철거돼 마르찬 휴양 공원에 전시됐다가 지난 2005년 베를린시가 청계천 복원 완공 시점에 맞춰 통일을 염원하며 서울에 기증했다.

정씨의 글이 공개되자 무분별한 행동이라고 비난하는 목소리가 이어졌고, 정씨는 비판 여론이 일자 곧바로 SNS를 탈퇴했다.

베를린 장벽 소유권은 서울시가, 관리는 중구청이 맡고 있다. 서울시와 중구청은 “금주에 경찰에 수사 의뢰를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다만 중구청 관계자는 “수사 의뢰는 하지만 이미 훼손된 부분은 회복할 방법이 없어 보인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해 성동구와 중랑구 지하철 차량업소에 대형 그라피티를 그려 공동주거침입‧공동재물손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영국인 형제에게 법원은 징역 4개월을 선고한 바 있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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