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의 서재] 최양하 한샘 회장
가구 회사는 제조업일까. 나무를 자르고 붙여 가구를 만드는 것을 생각하면 제조업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국내 최대 가구 회사인 한샘을 이끄는 최양하 회장은 “서비스업”이라고 단언했다.
“가구는 서비스업” 발상의 전환 #매일 고객의 불만 사항 직접 챙겨 #이케아 공습 막아내고 큰 폭 성장
“가구는 고객 상담, 설계, 실측, 발주, 시공, 애프터서비스까지 모두 사람이 한다. 한 번 사면 10년도 넘게 사용하는 동안 서비스가 이어져야 한다”며 가구업체를 서비스업으로 재정의한 발상의 전환이 최 회장의 핵심 경영 비결이다. 그는 국내 최장수 최고경영자(CEO) 중 하나다. 1994년 대표이사에 올라 24년째 사령탑을 맡고 있다. 그동안 한샘 매출액은 1270억원에서 지난해 2조625억원으로 16배 뛰었다.
지난달 서울 상암동 사옥에서 만난 최 회장은 "부진할 때보다 빠르게 성장할 때 경영이 더 어렵다”며 "급격히 성장할 때도 서비스 품질을 유지하는 것이 언제나 과제이자 도전”이라고 말했다. 고비 때마다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꺼내 든 책이 『서비스 경영 불변의 원칙 9(김앤김북스)』다. 텍사스 A&M 대학 메이즈경영대학원의 레오나드 베리 교수가 쓴 이 책은 미국 정리용품 전문점 컨테이너스토어, 렌터카 회사 엔터프라이즈 등 14개 노동집약적 서비스 기업의 성공요인을 분석하고 있다.
최 회장은 1997년 외환 위기 직후 회사가 급성장할 때 처음으로 서비스에 주목했다. 고비용 저효율 구조에서 벗어나며 4년 만에 매출이 두 배로 뛰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단기간에 성장하느라 품질과 서비스 수준이 떨어졌다. 최 회장은 서비스 강화로 차별화에 나섰다. 지금도 최 회장은 매일 고객 불만 사항을 직접 챙긴다.
"하루에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구매하는 고객이 3000명이다. 그중 불만 고객이 몇 명인지, 영업·구매·생산·시공 등 어느 부문에서 불만이 나오는지 매일 확인한다. 고객이 미처 알지 못하는 불만까지 불만으로 집계한다. 예컨대, 공정상 한 번에 시공해야 하는데 두 번 방문한 기록이 있으면 실패다.”
상담·시공서 사후 관리까지 꼼꼼히
이런 변신은 세계 1위 가구·생활용품 기업인 스웨덴 이케아가 2014년 국내에 진출하면서 진가를 발휘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북유럽 디자인을 즐길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이케아의 진출은 한샘을 비롯한 국내 가구업계에 타격을 입힐 것으로 우려됐다. 하지만 2015년 한샘은 전년보다 29% 성장했다. 일찍이 구축해 놓은 서비스의 힘이었다. 이케아는 소비자가 가구를 직접 조립해 쓸 수 있도록 자재와 부품을 판다. 영업사원도 시공기사도 없다.
‘사실상 모든 기업은 어떤 행위를 통해서든 고객 가치를 창출하는 한 서비스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23페이지)’는 구절이 이같은 서비스 중심 경영의 토대가 됐다. 한샘은 시공부문 전문화를 위해 국내 가구업계에서는 처음으로 시공관리 전문회사를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이 회사와 협력관계를 맺은 시공기사 4500여 명은 정기적으로 서비스 품질 교육을 받으며 활동한다.
24년째 사령탑 맡아 ‘샐러리맨 신화’
- 그렇다면 앞으로의 목표는.
- "한샘을 대기업으로 만드는 것이다. 가구는 가전보다 큰 시장이다. 국내 매출 10조원은 달성할 수 있다. 2016년 시작한 리모델링 서비스 ‘리하우스(re-haus)’가 자리 잡으면 성장에 속도가 붙을 것이다. 전자기기에 표시된 ‘인텔 인사이드’처럼, 아파트에 ‘한샘 인사이드’를 구현하고 싶다. 실내는 우리가 건설회사보다 전문가다. 지난해 상하이에 문을 연 첫 직영 매장을 시작으로 중국 사업도 본격화할 계획이다.”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1973년 대우중공업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최 회장은 79년 한샘으로 옮겼다. 당시 한샘은 건축설계사 출신인 조창걸 명예회장이 창업한 지 9년 된 연 매출액 15억원의 중소기업이었다. 작은 회사를 큰 회사로 키워보고 싶다는 포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람대로 입사 15년 만에 CEO에 오르며 회사를 매출액 2조 원대 중견기업으로 키워냈다. 24년째 CEO를 맡다 보니 창업주거나 그 가족으로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순수한 전문경영인이다. 최 회장이 ‘샐러리맨 신화’로 불리는 이유다.
- 직장인들에게 비결을 알려달라.
- "회사에는 두 부류 사람밖에 없다. 주인이냐, 머슴이냐. 주인으로 일하면 주인이 된다.”
- 주인은 어떻게 일하나.
- "주인은 스스로 일하고 머슴은 누가 봐야 일한다. 주인은 힘든 일을 즐겁게 하고 머슴은 즐거운 일도 힘들게 한다. 주인은 일할 시간을 따지고 머슴은 쉬는 시간을 따진다.”
- 요즘 분위기에는 너무 구식 아닌가.
- "우리만 그런 게 아니다. 구글 사람들도 비슷한 얘기를 한다. 자신을 구글 사원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고, 구글의 파트너라고 생각하고 일한다는 얘기를 많이들 하더라.”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