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면단위 유일, 감곡초등학교 여자축구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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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오늘은 황사가 심해 간단히 몸만 풀고 훈련을 끝낼 거야. 집에 가서 열심히 공부들 해."

"예-."(신나는 합창)

▶ 감곡초등학교 축구소녀들이 천연잔디가 깔린 운동장에서 드리블 연습을 하고 있다.음성=정영재 기자

열여덟 명의 올망졸망한 소녀들이 '축구부 쉼터'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뛰쳐 나간다. 1m60cm가 넘는 꺽다리가 있지만 1m35cm에 30kg이 채 안되는 꼬맹이도 있다. 안경 쓴 아이도 여럿이다.

전국 유일의 면 단위 초등학교 여자축구팀인 충북 음성군 감곡초등학교 축구부. 2002년 12월 창단됐다. 전교생 617명에 6학년 여학생이 37명이고 그 중 10명이 축구선수다. 그리고 5학년 6명, 4학년 2명. 하지만 단출한 시골학교 팀이라고 얕보면 안된다.

지난 8일 4개 팀이 출전한 소년체전 충북 예선에서 결승에 올라갔었다. 승부차기에서 져 아깝게 탈락했지만 마을사람들은 대견함에 가슴 벅찼다.

"대부분 농사를 짓거나 과수원을 하는 부모 밑에서 어렵게 사는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 팀을 만들었습니다"라는 김학용 교장의 말마따나 아이들은 모두 밝고 구김살없는 표정들이다.

수업을 모두 마치고 오후 3시부터 훈련을 한다. 학부모는 축구부에 회비 한 푼 내지 않는다.

축구부 1년 예산은 2500만원. 우수선수 스카우트는 꿈도 못 꾸고, 코치 한 명 두기도 어렵다.

그런 형편에도 김동기(30) 감독을 두고 있는 건 든든하고도 큰 자랑이다. 김동기 감독은 지난해 말 이 학교에 부임해 사실상 무보수로 자원봉사하고 있는 총각 선생님. 통진종고-영남대에서 미드필더로 활약했고, 2003년에 1년간 브라질로 코치 연수도 다녀온 엘리트 지도자다.

청주에서 남자 중학교 팀을 맡고 있던 그는 감곡초 교장.교감 선생님의 간곡한 부탁에 '얼굴이나 한번 보자'는 심정으로 학교를 찾았다고 한다. "초롱초롱하지만 왠지 주눅이 들어 보이던 그때 아이들의 눈망울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어요. 어려운 여건에서 운동하는 아이들을 맡아 제대로 키워보고 싶었지요."

김 감독이 받는 돈은 충북체육회에서 지원하는 월 80만원의 보조금이 전부다. 이마저 어려운 아이들 축구화나 장비 사주고 나면 남는 게 없다.

청주에서 한 시간 거리를 버스로 통근하면서 열성을 다한 김 감독 덕분에 선수들의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늘었다. 공격수 김은지(6학년)는 이제 13세 이하 유소년 대표팀 발탁이 유력할 만큼 컸다. 은지는 "박은선(서울시청) 언니처럼 뛰어난 선수가 돼 월드컵에도 나가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이 학교 운동장에는 천연잔디가 깔려 있다.

지난해 국민체육진흥공단의 지원금 1150만원을 받아 만들었다. 주말에는 조기회 팀에 빌려주고 사용료는 축구부 살림에 보탠다.

"두고 보세요. 올 가을 쯤엔 우리 축구부 덕분에 감곡면이 전국적으로 이름이 날 거예요." 이규상 교감의 말이다.

음성=정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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