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장애인에 문 닫은 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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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얼마 전 정부가 발표한 지난해 말 기준 장애인들의 생활상이다. 경제 수준 세계 11위 국가의 뒤안길엔 이렇게 짙은 음영이 드리워 있다. 소외계층을 감싸 안겠다고 호언하던 참여정부 출범 초기 외침은 보건복지부 소관 장애인 관련 예산이 정부 지출의 0.45%로 전년보다 0.03% 증가하는 데 그치면서 힘을 잃어가고 있다. 장애로 인해 추가로 들어가는 비용 월 15만5000원의 절반도 못 챙겨주는 '비대하나 심약한' 정부가 되고 말았다.

중증장애아를 둔 부모 중 한 명은 직업을 포기하게 되고, 장애아동 부양수당은 동결되고, 90%가 넘는 장애인이 그 가족의 부담과 도움 속에서 생을 영위하고 있다. 이쯤 되면 정부의 장애인 정책은 말 그대로 막가자는 것이다. 언약이나 말던지 참여정부 출범 초기에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제정키로 한 공약도 오리무중이다. 여기에 복지예산의 지방 이관으로 빚어지는 각종 혼선을 고려하고, 장애 관련 예산의 쓰임새가 대부분 시설 투자 등 경직성 경비인 점을 생각하면 정부가 장애인에게 기본적 성의도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좀 산다는 나라들은 장애인을 생활하는 주체로 보고 하루하루의 생활을 비장애인과 똑같이 누릴 수 있도록 문밖으로 나가 지원한다. 장애인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각종 권리행사를 하고 문화적인 삶을 누려야 하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동선에 따라 필요한 복지 욕구를 도출하고 이에 응답하는 것을 정부의 기본적 책무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장애 종류와 정도.경제력.집안을 포함한 지역사회 환경 등을 고려, 어떠한 서비스가 얼마 동안 필요한지 섬세하게 계산해 개인별 수준에 맞게 지원하고 있다. 장애인이 이에 대한 조사를 요청하면 정부는 사정평가 후 지원할 의무가 주어진다. 영국 등 선진국의 장애인에 대한 지역사회 중심 지원모델이다.

일터에 나가 일하는 중증장애인들은 심지어 택시로 출퇴근할 수 있도록 정부가 밀착 서비스를 하며 때로는 동반 고용 형태로 비장애인과 함께 경제활동에 임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럴 경우 장애인을 고용한 기업도 그로 인한 손실이 없기 때문에 고용에 대한 편견도 줄어든다. 일반 일터에서 일하기 힘든 장애인들은 정부가 편의시설을 갖춰 설립한 기업에서 숙련공으로 거듭난 뒤 전직할 수 있다.

답답하지만 우리를 다시 돌아보자. 장애로 인한 추가비용과 장애아를 둔 가족의 보호비용은 가장 기초적인 것으로 하루속히 해결돼야 한다. 수당체계를 개선하든지 장애연금을 도입하든지 더 망설일 시간이 없다. 그래야 고용문제의 왜곡도 풀릴 수 있다. 정부의 솔선이 민간기업을 견인할 것이며 장애인의 다급한 묻지마식 취업과 이직 등을 막을 수 있다. 그 뒤 고용영역도 아니고 기초복지영역도 아닌 보호고용의 영역을 노동부와 보건복지부가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한다. 지난해만 해도 1000억원이 넘어 장애인고용촉진기금 고갈의 주된 원인이 되고 있는 장려금의 지급 기준도 이제는 간추려야 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장애인의 날은 찾아왔다. 이달에 도심에서 활동보조인제도 확대를 요구하는 중증장애인들의 절규가 마음에 걸린다. 이를 보며 조선조 초 '명통시'라는 시각장애인단체를 설립하게 해 지원하고, 중종대에는 우의정 권균이 간질 때문에 사직하고자 했지만 극구 만류하는가 하면, 고려조 이후 자립 가능한 장애인과 자립하기 어려운 장애인을 구분해 차별 지원하던 조상님들은 역사가 반드시 앞으로만 가는 게 아니구나 하고 한탄하실지도 모르겠다.

이성규 서울시립대 교수·사회복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