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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살리는 '수입 다변화 모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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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허약한 농촌 경쟁력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농촌 경쟁력 강화는 종래와 같은 식량 생산 하나에만 매달리는 수익구조로는 어렵다. 새롭게 식량.에너지.자원.관광이라는 복합수익구조를 창출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실은 근대 이전까지만 해도 우리 농촌은 식량.자원.에너지를 생산하는 복합경영을 해 왔다. 산.들.논밭에서 농림축산물을 생산하는 동시에 목재.땔감 등의 자원.에너지를 생산해 쓰고 남는 것은 도시에 내다 파는 복합적인 수익구조였다. 당연히 다양한 수익원인 산.들.논밭을 소중히 여겼다. 이렇게 잘 관리된 건강한 삼림 생태계와 농촌 생태계는 산소 생산과 이산화탄소 흡수, 수자원 함양, 자연 정화 기능을 제대로 수행했다. 당시 농촌에는 복합경영구조 아래서 다양하게 돈을 벌고 환경이 잘 지켜지는 메커니즘이 성립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오면서 이 복합경영구조는 깨지고 완전히 단일품목의 경영구조로 바뀌었다. 화석에너지와 자원의 수입으로 농촌의 에너지.자원 생산기능은 상실됐다. 그 결과 농촌은 식량이라는 단일품목만을 생산해 수익을 창출하는 단품 수익구조로 변했다. 그 속에서 식량 생산의 고도화를 위해 노력해 왔지만 갈수록 수입 제품으로 경쟁력을 잃고 있다. 농촌경제는 피폐해져 젊은이는 떠나고 농업의 쇠퇴는 삼림 및 농업 생태계의 기능 저하로 이어졌다. 정부도 천문학적 돈을 쏟아 부어 농촌 살리기에 힘써 왔지만 농업 쇠퇴와 환경 악화의 악순환은 심화되고 있다.

이제는 우리 농촌을 현대판 식량.에너지.자원.체험관광 복합수익구조로 재구축해 경쟁력을 살려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세계 선진국 사례에서 보듯이 새로운 에너지.자원 기술을 활용해 농촌을 현대판 에너지.자원생산 기지로 복원시키는 것이다. 에너지 면에서는 골치 아픈 삼림 폐재, 농작물 폐기물, 가축 분뇨, 인분 등을 새로운 바이오매스 에너지 원료로 활용한다. 그리고 휴경 농지에서는 바이오매스 연료작물을 생산한다. 태양광.풍력.수력발전을 도입해 불안정한 자연에너지의 약점을 극복하고, 지역 내에서 전기.열.가스.경유를 생산해 서로 융통해 사용하는 마이크로 그리드(Micro Grid) 시스템을 도입한다. 이렇게 생산된 에너지로 농촌의 가정.비닐하우스.농기계 등에 필요한 에너지를 자급하고 남는 것은 도시에 판다. 자원의 경우에도 새로운 바이오 소재 개념을 도입할 때 생분해성 플라스틱 등 전혀 새로운 신소재 생산의 가능성이 열린다.

이와 함께 농촌을 본격적인 자연재생 체험 학습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농촌에서 삼림 관리 등에는 막대한 일손이 필요하다. 농협을 중심으로 재미있는 삼림.농업 생태계 학습프로그램을 만들어 도시인들의 참가를 유도한다. 도시의 학생 및 시민들은 건강에 좋은 삼림요법을 즐기면서 살아 있는 자연과학 공부를 할 수 있다. 이러한 새로운 기능 복원과 함께 농촌은 환경친화적 농법으로 안전한 농.축산물을 생산하고 농촌.도시 간에 새로운 식량.에너지.자원의 산지 직송 체계를 구축한다.

언제까지 대증요법만을 반복할 수는 없다. FTA에 대비한 단기 대책과 함께 중장기적으로 농촌 체질을 복합수익구조로 바꾸고, 이런 모델을 조속히 개발해 전국에 보급해야 한다. 그럴 때 농촌경제는 살아나고 인구분산.균형발전의 밑바탕이 될 수 있다. 이는 동시에 환경능력을 높이면서 장기적인 식량 위기에 대처하는 길이다.

정선철 사회설계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