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영화사는 드라마 찍고 방송사는 영화 찍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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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1. '흡혈형사 나도열'의 옐로우필름이 제작하고 한지승 감독('찜' '재밌는 영화'), 박연선 작가('동갑내기 길들이기')가 의기투합한 작품은?

질문 2. MBC가 제작비의 반을 대고, 촬영 조명 감독 등 주요 스태프와 기자재를 대거 투입한 작품은?

1번의 답은 SBS 월화 드라마 '연애시대', 2번은 영화 '달콤, 살벌한 연인'이다. 요즘 국내 영상업계의 화두는 영화와 드라마 장르의 크로스오버다. 영화 제작사가 드라마를 만들고 드라마 제작사가 영화를 선보이는 식이다. 제작자는 물론 감독.작가.스태프들까지 좀체 넘나들지 않던 옆 동네로 잰걸음을 옮기고 있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살 길을 찾아 나선 거다." 김창권 대우증권 연구원의 말이다. 특히 코스닥에 진입한 영상관련 업체들은 성장에 대한 강한 압박을 받고 있다. 해답은 라인 업의 다양화. 제작 편수와 종류가 늘어야 매출이 올라가고 투자 실패 위험도 낮아진다는 설명이다.

김 연구원은 "매력적 인수합병 대상이 되기 위한 노력일 수도 있다"고 했다. DMB.와이브로 등 뉴미디어사업 주체인 대형 통신사들은 빈 편성표를 메워줄 콘텐트를 필요로 한다. 대박 작품 한 편보다 평균작 열 편이 나은 셈이다.

매니지먼트사들의 드라마 시장 진출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이미 스타 반열에 오른 연기자는 실제로는 '돈'이 안 된다. 수익 배분 비율이 잘 돼봐야 80(연기자) 대 20(매니지먼트사)인 까닭이다. 김상영 IHQ 이사는 "(몸값) 인플레가 심하다 보니 회사로선 생존을 위해 사업 다변화를 꾀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희망은 오히려 갓 전속계약을 맺은 신인들. 신인 띄우기에야 드라마만한 것이 없을 터다. 한류 바람을 타고 아시아 스타로까지 발돋움하면 수익은 극대화된다.

한류는 영화사들이 속속 드라마 제작에 뛰어들게 된 직접적 계기이기도 하다. 일본에서 드라마 한 편이 뜨면 그에 대한 TV소설.대본집.해설집.화보집.배경음악(OST).DVD.인터넷 다시보기(VOD).비디오까지 동반 히트를 한다. 김태원 올리브나인 상무는 "드라마 제작 비용이 편당 2억원까지 올라간 것도 작품 완성도를 높여 일본 시장에서 성공하려는 목적이 크다"고 했다.

방송사가 영화 제작에 발 들여놓는 까닭은 또 다르다. SBSi 신형철 영화사업실장은 "일차적으론 (명절 등에 선보일) 영화 콘텐트를 보다 쉽게 확보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국산 영화의 방송권 구매가는 10억~15억원 선. 그럴 바에야 차라리 직접 제작하고 말자는 계산이다. MBC프로덕션 김정호 영화기획부장은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뉴미디어에 잠식당한 지상파 방송의 옛 시장을 되찾기 위한 방편 중 하나"라 말했다.

영화-드라마 크로스오버의 기술적 기반은 HD(고화질)카메라다. 요즘 영화의 약 30%는 필름이 아닌 HD카메라로 촬영된다. HD 촬영 경험은 방송사가 오히려 앞선다. 덕분에 요즘 HD영화 촬영 현장은 언뜻 봐선 드라마 현장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주요 스태프들이 영화-드라마 현장을 자유로이 넘나들 수 있게 된 직접적 계기다.

감독들도 서로의 영역을 기웃대기 시작했다. 특히 드라마 PD들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안판석('장미와 콩나물') 감독은 영화 '국경의 남쪽', 김윤철('내 이름은 김삼순') 감독은 '통역사', 김재형('여인천하') 감독은 '삼청교육대', 이형선('황금마차') 감독은 '천하명당 무도리'를 준비 중이다.

스태프는 영화 출신의 드라마 진출이 도드라지는 모양새다. 급여 차이가 큰 요인이다.

드라마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와 영화 '체인지'등을 연출한 JS픽처스 이진석 대표는 "제작환경이 비슷해진 데다 서로에 대한 배타성도 줄어든 만큼 크로스오버 현상은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며 "무엇보다 투자자들이 영화, 드라마 양쪽에 다 진출하길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나리 기자

왜 시나리오 작가가 드라마로 갈까

고료 훨씬 높은 데다
작가의 재량도 많아

영화 시나리오 작가들의 드라마 '월경(越境)'을 두고 업계에선 '골드 러시'란 표현을 쓰기도 한다. 드라마 쪽 수익이 훨씬 낫기 때문이다. 영화 한 편당 5000만~1억원을 받는 일급 작가라면 드라마 쪽에서는 편당 1000만~1500만원까지도 받을 수 있다. 20회 미니시리즈라면 총 2억~3억원에 이르는 큰돈이다. 능력을 인정받으면 이른바 '2000만원 클럽'(편당 2000만원을 받는 작가군) 회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작가들은 경제적 이유보다 정신적 만족을 더 크게 친다. 영화 'S다이어리', 드라마 '불량주부' 등을 쓴 설준석 작가는 "영화 작업은 워낙 변수가 많아 종종 소모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영화 '댄서의 순정', 드라마 '건빵선생과 별사탕'의 박계옥 작가도 "영화란 기본적으로 감독의 예술"이라며 "작가로서의 자존심과 표현욕을 살리는 데엔 드라마가 나은 점이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드라마판에서 영화 작가들을 모셔가는 이유는 뭘까. 설 작가는 "'궁'이나 '불량가족'처럼 컨셉트 강한 기획 드라마들이 많아진 때문일 것"이라 말했다. "컨셉트의 테두리 안에서 스토리를 풀어가는 능력은 아무래도 영화 작가들이 강한 측면이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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