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시네파일] 할리우드에 판치는 범생이의 성적 환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1면

예상밖 결과인데, 할리우드나 충무로나 사정은 비슷한 모양이다. 적어도 여배우들의 사정 말이다. 21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데브라 윙거를 찾아서'는 '할리우드에서 여배우로 살아간다는 것은'에 대한 답이다. 그 자신이 '펄프 픽션' 등에 나왔던 여배우 로잔나 아퀘트가 메가폰을 잡았다. "톱배우 데브라 윙거는 왜 정상에서 은퇴했을까. 여배우에게 사회적 성공과 가정은 양립 불가능인가가 다큐의 출발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등장하는 인터뷰 대상은 무려 30여 명. 면면이 화려하기 짝이 없다. 제인 폰다.바네사 레드그레이브.홀리 헌터.우피 골드버그.샤론 스톤.다이안 레인.줄리아 오몬드.맥 라이언.기네스 펠트로.셀마 헤이엑.다릴 한나에서 에마누엘 베아르에 이르는 톱스타들이다.

충무로와 비슷한 사정은 이런 거다. "나이 40만 되면 '한물 갔다'는 노골적 시선을 피할 수 없고 엄마나 이모 등 병풍 캐릭터에 만족해야 한다." "문제는 남성 제작자들이다. '범생이'출신 제작자들이 뒤늦게 자신의 성적 환상을 영화에다 풀려고 하니, 영화 속 여성 캐릭터가 섹스 심벌 일색이다." 여기에 파파라치에 시달리며 대중의 성적 대상으로 소비되는 여배우들의 개인적 고충, 심지어 오디션에 갔더니 선발기준이 오직 '같이 잘 수 있는가'였다는 충격적 체험담까지 이어진다.

다큐의 모티브가 된 데브라 윙거는 "'사관과 신사'의 제작자가 내 얼굴이 너무 통통하다며 이뇨제를 먹으라고 했다"며 "영화 9편을 못 찍는 것보다 가족과 친근한 정을 나누지 못하는 것이 더 안타까워 은퇴를 결정했다"고 털어놓았다.

여배우들에게 유혹적인 성형에 대한 반응도 흥미롭다. 출연 배우들은 대부분 "젊음에 집착하지 않는" 메릴 스트리프, 수전 서랜던, 오종 감독의 '사랑의 추억'에서 중년 여성의 완숙함을 연기한 샬럿 램플링을 멋진 여배우로 꼽았다. 또 "배우는 나이에 따라 달라지는 얼굴을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에 성형은 금물"이라는 리브 울만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진솔한 인터뷰와 함께 화려한 스타덤에 가려진 배우들의 맨얼굴을 만날 수 있는 것이 매력이다. "배우는 남의 영혼에 들어가는 대가로 돈을 받는 사람. 연기는 영혼에는 좋지만 신경에는 나쁘다"(제인 폰다), "나 자신을 내 딸처럼 사랑하는 것이 답이다" 등 배우의 지성을 보여주는 주옥같은 말들은 덤이다.

지난해 서울여성영화제에서 소개돼 화제를 낳았던 다큐. 차분한 여성주의 다큐로도, 잘된 인터뷰의 모범으로도 손색없다.

'송환''어떤 나라' 등 수작 다큐멘터리를 '다큐 인 나다 시리즈'로 상영해 온 서울 대학로의 하이퍼텍 나다에서 개봉한다. 나다는 이와 함께 2005년 아카데미 최우수 다큐멘터리 수상작인 '꿈꾸는 카메라-사창가에서 태어나'도 상영한다. 여성 다큐멘터리 감독 자나 브리스키가 인도 콜카타의 사창가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사진을 가르치고 그를 통해 희망을 발견하는 과정을 담은 수작이다.

양성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