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등 시민의 꿈 "깨끗하고 친절한 「서울」보여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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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삼복더위가 한풀 꺾인 서울의 거리에 올림픽 열기가 다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LA 올림픽을 성공으로 이끈 원동력이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적인 노력 등 시민정신 이었듯이 서울 올림픽도 온 시민의 참여와 호응, 그리고 협력으로 이루어지는 시민올림픽으로 승화되어야 한다는 것이 한결같은 여망이다.
송파벌 노인들의 한복 차려입기 이색운동하며 아파트촌의 오륜기 내걸기·꽃 서울 가꾸기 등이 그렇고 달라진 택시의 모습, 생업의 터전을 올림픽에 잠시 양보한 노점상, 민생시위의 유보 등 성공올림픽을 위한 시민운동이 거리에서, 마을마다「손에 손잡고」번져가고 있다.
새벽 육교청소·공중변소 청소에 땀흘리며 「도시의 악취」를 씻어내고 때를 걷어내는 더욱 값진 시민정신도 있다.
『한복의 멋을 한껏 과시해봐야겠어요. 서울 송파벌 노인회(회장 한호철.70·잠실동 우성아파트 l7동802호) 회원 2백여 명은 대회기간 중 경기관람을 갈 때나 외출을 할 때는 도포와 갓 차림으로 한국의 인상을 깊게 심어주겠다고 벼르고 있다.
잠실 주공3단지 새마을 시장 안 노점상가에서도 시민운동은 일어나고 있다.
『외국 사람들이 보기에 언뜻 지저분하다고 느끼거나 교통에 지장을 주게될 50여 노점상들이 스스로 개막일 이틀전인 9월15일부터 폐막일인 10월2일까지 장사를 않거나 골목길로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이 시장 노점상 친목회장 김영태씨 (50) 는 『거리의 모습에서 자칫 후진국이라는 인상이라도 주게 된다면 국가적으로 이득 될 것이 없고, 그것은 우리 전체의 손해로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올림픽 주경기장파 올림픽공원 사이의 도로 옆에 있는 이곳노점상들은 88아시안 게임 때도 스스로 철시를 했던 것.
택시도 불쾌감을 주던 어제의 모습과는 다르다.
특히 외국 관광객들에게 바가지 요금을 받아 내 원성을 샀던 중형택시 (88택시) 의 달라진 모습이 그 한 예.
『한국의 첫 인상을 받게 될 공항에서부터 바가지 요금을 물게 된다면 무엇보다 모든 물건값이 다 그린 줄 알지 않겠어요. 이제 모두가 올림픽 요원이라는 생각으로 새 출발했습니다.
뉴코리아 중형택시 서울1자2901호 운전사 차상호씨(41)의 새로운 각오.
서울2바3228호 중형택시운전사 신정호씨 (4) 도 『올림픽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영어·일어회화테이프로 공부 중』이라고 했다.
그러나 서울의 가장 큰 고민은 도심의 교통난. 택시 잡기가 어렵다든가 바가지요금 횡포가 심하다는 문제보다 차량의 폭주와 무질서운행으로 인한 교통체증이 더 큰 문제.
『대회기간 중 짝·홀수 격일 운행제가 실시된다는데 정말 시민들이 이를 잘 지켜주어야겠어요. LA에서는 시민들이 자가용차를 세워놓고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거나 가까운 거리에선 걸어다녔다고 들었어요. 과거 큰 행사 때도 경험한 일인데 너도나도 편하려고 차를 몰고 들어가면 교통이 마비되고 더 큰 불편을 겪게 될 것입니다.
서울시 교통당국자의 호소는 설득력이 있다. 경기장 에 이르는 도로가 막히면 임원·선수차량이 통과할 수 없고 자칫하면 경기가 예정대로 진행되지 못 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선 올림픽패밀리전용선을 만드는 게 바람직하다.
숙박업소나 음식점등 서비스 업계에서는 요즘 스마일 운동이 한창이다.
「한국인은 너무 무뚝뚝한 것 같다」는 기사를 읽은 후로 매일 거울 앞에서 「웃는 얼굴」 연습을 한다』는 서미영 씨 (25·여·서울석촌동 호수장 여관 근무)는 「친절은 돈 안 드는 투자」임을 깨달은 듯 미소연습을 하느라 처음부터 끝까지 웃는다.
육교·냄새나는 공증변소 청소등 을 하는 새마을 부녀회원들의 소리 없는 시민운동은 외국인들에게 청결 한국을 심어줄 한줄기 청량수다.
21일새벽 6시, 간밤의 어둠이 아직 어슴프레 깔려 있는 명동성당 뒤편 육교 위.
명동 새마을 부녀회원 8명이 바닥의 껌을 떼 내고 걸레로 난간을 닦아 내는 등 열심히 청소를 하고 있다.
아시안게임 직전부터 전체회원 24명이 3∼4개조로 나뉘어「누가 보지 않는」 이 일을 지금껏 해오고 있다.『행인들이 많지 않은 시간에 청소를 하려면 새벽시간 밖에 없다』고 회장 노송자씨(46·서울 남산동 2가45의2) 는 고충담을 털어놨다.
서울시 새마을부녀회원 5만5천여명 중 매일 8천여 명이 서울시내 공중변소 7백92개소와 육교 2백1개를 맡아 청소하고 꽃 서울 가꾸기를 한다.
오금동 새마을 부녀회 (회장 김형자· 42· 오금동 226의 2)는 동사무소 앞 빈터 꽃 묘판에서 길러 낸 갓 꽃·촛불 꽃·메리골드 등 1만7천 그루로 올림픽 선수촌 주변에 꽃동산을 만들고 있다.
19 일아침 서울 국립묘지 앞길에서 꽃길을 가꾸던 흑석동 새마을 부녀회원 장매자씨 (5)의 바람은 차라리 감동적이다.『지구촌 가족들이 서울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편히 지내다 갈 수 있다면 기분 좋은 일 아니겠느냐』고 .
『아시안게임 때는 선수촌 내 방 청소를 맡았던 자원봉사 학생들이 한동안 보이콧 소동을 벌여 애를 먹은 적이 있어요. 불편도 많고 언짢은 일도 있겠지만 이를 참고 귀찮고 어려운 일을 해내는 것이 참다운 시민정신이 아니겠습니까.
올림픽선수촌 운영실무자들의 말이다. 자원봉사자들이 사람 만나고 구경에 정신이 팔리는 일이 없도록 성의와 책임을 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도리라고 이들은 강조한다.
멀게만 느껴졌던 올림픽 ,26일 앞으로 다가선 「인류의 화합과 전진」, 그날의 「잠실벌 성화」는 벌써 시민들의 가슴속에서부터 타오르고 있다.

<임수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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