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을 내후년까지 계속 급격하게 인상하면 일자리 14만 개가 줄 수 있다.”
KDI “문 대통령 대선 공약대로 #내·후년 15%씩 올리면 고용 충격” #부총리 이어 국책연구기관까지 #정부 최저임금 과속에 문제 제기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의 적정성에 대한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국내 대표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속도조절론’을 제기하고 나섰다.
최경수 KDI 선임연구위원은 4일 발표한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최저임금이 내년과 2020년에도 15%씩(전년 대비) 오르면 이로 인한 고용 감소는 2019년 9만6000명, 2020년 14만4000명으로 확대될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일자리안정자금이 지원되지 않는다는 전제하의 추정치다. 지난해 연간 실업자 수 102만8000명에 14만4000명을 더하고, 지난해 경제활동인구 2748만 명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전제로 계산하면 실업률은 3.7%에서 4.2%로 뛰게 된다.
보고서가 향후 2년간 최저임금 인상률을 15%씩으로 산정한 건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달성’이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 때문이다. 이렇게 해야 공약 이행이 가능해진다. 정부는 공약 이행을 위한 첫 단계로 올해 최저임금을 시간당 6470원에서 7530원으로 16.4% 인상했다. 이제 시행 5개월이 지났을 뿐인데도 1월에 33만 명을 넘었던 취업자 수 증가 폭(전년 동월 대비)이 2~4월 3개월 연속 10만 명대로 추락하고, 분배 지표인 5분위 배율이 사상 최악의 수준으로 나빠졌다. 경제 전문가들뿐 아니라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최저임금 인상 속도조절론을 제기한 이유다.
청와대는 기존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오히려 지난달 31일 문 대통령이 통계청 자료를 재가공한 통계를 바탕으로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가 90%”라고 밝혔다가 야당 등으로부터 “통계 조작”이라는 비판까지 받고 있다. 이런 와중에 국책연구기관인 KDI가 최저임금 급격 인상의 부작용 가능성을 제기한 건 청와대 입장에서 당혹스러운 일이다. 특히 KDI는 구체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의 양상까지 나열했다.
보고서는 “서비스업 저임금 단순노동 일자리가 줄고 하위 30% 정도의 근로자 임금 수준이 거의 비슷해지면서 근로자의 지위 상승 욕구가 사라져 인력 관리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또 “일자리안정자금 등 정부 지원 규모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늘어나고 사업주가 일자리안정자금 상한선인 190만원 위로 임금을 올리지 않으려 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프랑스, 최저임금 과속 부작용에 인상 중단 … 전문가 “청와대도 귀 기울여야”
다만 보고서에는 청와대의 입맛에 맞는 대목도 있었다.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미친 악영향을 아직은 발견할 수 없다는 부분이다. 최저임금을 완만하게 올렸던 미국과 급격하게 올렸던 헝가리의 선례를 고려할 때 올해 3만6000~8만4000명의 고용이 줄 수 있지만 아직 고용이 줄었다는 증거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게 근거다. 취업자 수 증가 폭 둔화에 대해서도 “인구 증가 폭 축소와 자동차와 조선업 등 제조업의 대규모 구조조정 등을 고려할 때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으로 볼 수 없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결론은 명확했다. “앞으로도 계속 급격하게 최저임금을 올리면 득보다 실이 클 것”이라는 게 보고서의 핵심 주장이다. 보고서는 “최저임금 인상은 경제 전반에 걸친 가격과 근로 방식의 조정으로 목적을 달성하려는 정책인 만큼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은 비용을 증가시킨다. 최저임금을 내년에도 15% 인상하면 최저임금의 상대적 수준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인 프랑스 수준에 도달하는 만큼 인상 속도를 조절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현재 프랑스의 최저임금은 임금 중간값의 61% 수준이다. 프랑스는 2005년 이 비율이 60%에 도달해 부작용이 속출하자 사실상 최저임금 인상을 중단했다. 2016년 현재 임금 중간값 대비 최저임금 비율은 미국 35%, 일본 40% 수준이다.
한국은 이 비율이 지난해 49%에서 올해 55%로 높아졌다. 2019년과 2020년 최저임금이 15%씩 오르면 이 비율은 각각 61%와 68%에 달해 프랑스를 추월한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KDI가 청와대에 직설적으로 얘기하기 어려운 국책연구기관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 정도면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다’는 메시지를 던졌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을 도입한 의도는 나쁘지 않지만 경제라는 건 설계한 대로 되는 게 아니다. 청와대와 정부도 쓴소리에 귀를 기울여 정책 기조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박진석·하남현 기자 kailas@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