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나포는 우리가 원하는 것"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서남해 해상치안 합동훈련이 18일 목포지방해양경찰본부 주관으로 추자도 인근 해역에서 실시됐다. 목포·여수·제주해경 소속 구난 헬기 4대와 경비정 13척이 참가했다. [연합뉴스]

일본 정부가 한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8일 해양탐사선을 출항시킨 것은 한국을 압박하기 위한 '계산된 양동작전'으로 관측된다. 일본은 외교채널을 통해 '한국이 국제수로기구(IHO)에 한국식 지명을 제출하지 않으면 출항시키지 않겠다'는 신호를 보내는 동시에 한국의 반응을 기다리지 않고 출항을 강행하는 등 압박전술을 구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식 벼랑 끝 전술인 셈이다.

18일 낮 일본 도쿄(東京) 나가타초(永田町)에 위치한 총리 관저. 이날 관저의 외교.안보 분야의 직원들은 대부분 비상대기 상태였다.

점심 식사도 대부분 구내식당에서 해결하고 외부와의 접촉도 끊었다. 이들은 "한국이 해저지명 상정계획을 철회하면 일본도 탐사선 출항계획을 철회할 것"이라는 일본 측 제안에 한국이 과연 어떻게 나올지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었다. 한편에선 도쿄항에 있던 해양탐사선을 동해 쪽의 돗토리(鳥取)현으로 옮기고 즉각 동해로 출동할 수 있는 태세를 갖췄다. 이 문제가 처음 불거진 14일부터 이곳 관저에선 해상보안청, 외무성 등 관련 부처 관계자들이 수시로 비상대책회의를 열며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다.

한 관계자는 일본의 탐사선 출항 방침을 놓고 한국에서 연일 장관급 대책회의가 열리고 여당에서 "(일본 탐사선에 대한) 나포(拿捕.선박을 붙들어 두는 행위)까지 검토해야 한다" "이건 선전포고다"라는 의견이 나온 데 일본 정부가 상당히 신경쓰고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민간 어선도 아니고 정부의 배를 나포하겠다는 말이 나온 이상 일본 정부도 만반의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모두 13척인 해양조사선의 성능을 일일이 비교하고 출항할 경우 어디까지 접근할 것인지 등에 대한 세밀한 논의도 이뤄졌다고 한다. 그 결과가 도쿄에 있는 해양조사선을 돗토리현으로 옮겨 한국의 반응을 본 다음 20일께 출항하는 쪽으로 방침이 정해졌다. 이 문제에 둔감한 일본 언론과 달리 일 정부 관계자들은 치밀하고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 일본의 속셈은=일본이 이 같은 양동작전으로 나온 것은 두 가지 전략이 깔려 있다. 먼저 명분 쌓기다. 한국 여론이 단호한 대응을 촉구하는 등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만큼 일본의 제안이 한국에 의해 수용될 가능성이 작다고 보는 것이다. 이 경우 국제사회의 여론이 일본에 유리하게 나올 것으로 계산한 것이다. 탐사선을 띄우는 데 따른 비판 여론을 잠재우고 그 책임을 한국에 전가할 수도 있다는 판단이다. 독도를 국제 영토 분쟁지역으로 만들려는 의도도 숨어 있다.

일 정부 관계자는 "한국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절충안"이라고 말하지만, 수로 조사를 위한 탐사선 파견 계획이 뜬금없이 나온 것이 아닌 만큼 이번 제안도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됐을 가능성이 크다.

설사 한국 정부가 일 정부의 제안을 수용할 경우에도 손해 볼 것이 없다는 판단이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