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급진정당만 득 보는 '양극화 전략'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양극화가 화두다. 성장의 그늘에 서있는 사람들을 끌어올리는 사회통합 노력은 분명 중요하다. 그러나 잘나가는 쪽을 끌어내리려는 하향 평준화는 최악의 처방이다. 그건 위아래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면서 정작 불평등만 악화되는 부작용을 낳는다.

참여정부 들어 수도권 땅값과 강남 집값이 폭등해왔는데 지방에서는 주택 해약 사태가 속출한다. 헌법소원까지 당하면서 수도 이전, 국토균형발전을 추진하고 강남주민을 '공공의 적'으로 만들면서까지 밀어붙인 부동산대책을 생각하면 기막힌 역설이다. 재산양극화를 줄이려는 정책이 재산양극화를 오히려 심화시켰다는 말인데 경제란 원래 그런 것이다. 하기야 수도권보다는 비수도권, 강남보다는 비강남의 표가 많으니 정치적으로는 합리적 판단이겠지만.

교육평준화는 오히려 교육양극화를 부추겼다. 평준화 이전 교육을 통한 계층 이동은 부와 지위의 대물림을 보완하고 경제에 활력을 주는 메커니즘이었다. 그런데 평준화 이후 매년 바뀌어온 입시제도에도 불구하고 사교육, 기러기 아빠, 강남 대치동 신화는 심해지고 소외계층 아이들은 특례입학제도 아니면 일류대학 가기도 쉽지 않다. 학교의 학생선발권과 학생의 학교선택권 부활이 최선책이다.

소득 양극화는 양상이 다르다. 1인당 실질소득은 1970년대 이후 외환위기까지 계속 늘었으며 그에 발맞추어 분배도 지속적으로 개선되었다. 특히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 사이 소득격차는 큰 폭으로 줄었는데 이는 삼저(三低) 호황 덕택이었다. 그간 억제됐던 임금의 대폭 상승과 포퓰리즘적 복지제도의 도입도 한몫했으나 전례없는 호황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다. 성장과 투자활성화가 양극화의 해법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성장과 분배 개선의 선순환은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나락으로 빠진다. 실질소득은 줄고 분배는 갑자기 악화됐다. 그러나 소득이 다시 늘면서 지난 6년간 분배상황은 꾸준히 개선됐다. 글로벌 경쟁시대에 중산층이 살기 피곤해진 건 사실이나 '중산층의 몰락'은 과장된 표현이다. 최상위계층과 최하위계층의 격차도 계속 줄어들고 있었는데 역설적으로 참여정부 들어 눈에 띄게 나빠졌다.

지난 30년간 소득 불평등이 중장기 성장을 저해한다는 증거는 약하며 오히려 단기 성장을 촉진하는 효과가 있었다. 또한 현 경제발전단계에서 장기 성장률의 상승은 소득 분배를 개선한다. 실제 86년까지는 고도성장이 소득 분배를 악화시켰으나 그 이후에는 고도성장이 소득 분배의 개선을 가져왔다.

중산층 양성과 양극화 해소의 해법은 글로벌 경쟁의 최전방에서 싸우는 우리 기업에 따뜻한 격려를 보내어 민간투자를 활성화하고 시장이 제 기능을 하도록 구조조정과 인프라 구축에 힘을 쏟는 데 있다. 이 시점에 최악의 처방은 세금을 늘려 재정복지 규모를 늘리는 것이다. 소비를 위축시키고 근로의욕을 줄여 모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는 경기에 찬물을 끼얹는다. 정부 소비가 늘어나 공공부문의 방만과 비효율성은 심해지고 민간부문은 위축될 것이다.

정치게임에서 양극화 이슈의 선점이 일거양득 전략으로 보일 수도 있다. 양극화 논쟁과 하향 평준화 정책으로 유권자 다수의 환심을 사서 좋고 그 결과 오히려 양극화가 심해지면 지지층이 공고해질 테니까. 그런데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지난 20여 년간 각종 선거를 살펴보면 경기가 나쁠수록, 그리고 분배가 악화될수록 급진 정당의 득표율이 높아졌다. 반면 진보정당 득표율이나 집권 여부는 경제적 요인보다 정치사회적 요인에 의해 결정됐다. 이러한 분석결과가 집권당에 주는 시사점은 분명하다. 양극화 드라이브를 단지 정치적 수사나 립서비스로 이용하고 끝내라는 것이다. 비생산적 재분배나 하향 평준화 정책을 실제 남발해 양극화가 심화될 경우 급진정당 좋은 일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김영세 연세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