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겨진 얼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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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6호 31면

[책 속으로] 요조의 책잡힌 삶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

책방의 하루는 늘 느긋하고 평화로울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책방이 가진 특유의 낭만적인 이미지를 거스르고 싶지 않아 웬만하면 말하지 않아서 그렇지 책방에서도 얼굴 붉힐 일이 정말 많다.

서울에서 책방을 하던 시절의 가장 고질적인 문제는 주차문제였다. 그 동네(종로구 계동 한옥마을)는 주차난이 늘 심각한 곳이었다. 언제나 관광객이 몰렸고 주차장은 멀었다. 그러다 보니 동네 여기저기에 제멋대로 주차된 차가 속을 썩이기 일쑤였다. 내 책방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그야말로 불법주차계의 핫플레이스였다. 내가 출근을 하면서 책방 문을 열기 전 먼저 하던 일은 책방 앞에 주차되어 있는 차주에게 차를 빼달라고 전화를 거는 것이었다. 책방 문을 열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버젓이 앞에 주차하려는 차로 달려나가 여기 주차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것도 매일 있는 일이었다. 앞에 세워놓은 나무로 만든 입간판을 몰래 주차하려는 차가 박살 내서 그걸 고치고 또 고치고 하는 것도 일상. 그뿐인가, 문이 열려있는 책방 앞에 주차하는 차로 달려나가 영업 중인 가게 앞에 주차를 하시면 어떡하냐고 묻자 왜 안 되느냐고 되려 내게 화를 내는 차주도 있었고, 차 빼달라고 전화했더니 지금 멀리서 식사 중이라 한 시간 뒤에나 갈 수 있으니 기다리라는 통보조의 답변을 듣고 별수 없이 책방 오픈을 늦추며 분을 삭여야 했던 적도, 아예 책방 문조차 열 수 없을 만큼 바짝 주차를 해놓은 주제에 전화번호도 적어놓지 않아 하루종일 손님을 받지 못한 적도 있었다. 구청에 전화해서 견인을 요청하면 되지 않느냐고? 했다. 수없이 했다. 그러나 견인차는 카카오 택시처럼 앞다투어 몇 분 내로 달려오는 그런 차가 아니었다. 오매불망 견인차를 기다리고 있는 와중에 유유히 자기 차를 빼러 오는 차주를 보면, 너무 화가 나서 눈이 돌아간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연락처를 남겨놓지도 않고 남의 가게 앞에 이렇게 차를…이 차 때문에 오늘 영업도 못 하고…”

치가 떨리도록 화가 나서 말도 제대로 못하고 부들부들거리고 있으면 열에 아홉은 그렇게 흥분할 일이냐는 얼굴로 ‘미안하다’라는 말을 휙 던지고 가버렸다.

이런 일을 노상 겪었다. 이런 일을 노상 겪다 보면 어떤 얼굴이 되는지 혹시 아는가? 나는 안다. 본 적이 있다.

예전에 나에게 차가 있던 시절, 주차공간이 아닌 곳에 슬금슬금 주차하려고 폼을 잡자마자 어디선가 득달같이 달려 나와 무섭게 성을 내던 얼굴들.

나는 책방을 열고 나서야 진심으로 그 구겨진 얼굴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 같은 사람을 매일같이 겪지 않고는 절대로 지을 수 없는 얼굴. 결국 나도 어느새 똑같이 따라 짓고 있는 그 얼굴.

저 청소 일 하는데요?

저 청소 일 하는데요?

허혁 작가님의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 속에서 나는 다시 한번 그 얼굴을 가만히 떠올렸다.

전주에서 5년째 시내버스 운전기사 일을 하며 겪은 다양한 희노애락들이 감칠맛 나게 적혀있는 이 에세이 속에는 ‘버스기사가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착용하는 이유’가 등장한다.

햇빛과 먼지를 피하기 위한 1차적 목적 외에, 그들은 얼굴을 가리기 위해서 쓴다고 했다.

하루 18시간 운전대를 잡은 채 온갖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만들어진 얼굴, 조금이라도 그 구겨진 얼굴을 감춰보려고 마스크도 끼고 선글라스도 쓴다고 적혀있었다.

장강명 작가님과 진행하는 도서 팟캐스트에 초대되셨을 때 ‘우리는 늘 화가 나 있어요’ 하고 자신의 얼굴을 미안해하던 허혁 작가님을 이제 나는 내가 매일 타는 수많은 버스 안에서 본다. 그들의 구겨진 얼굴이, ‘징그럽게 외롭고 고독한 삶의 대목’이 이제야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책을 읽으며 ‘이런 책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청소노동자의 책도, 배달노동자의 책도 읽어보고 싶다고. 그리고 거짓말처럼 얼마 뒤 내 책방에 이런 독립출판물이 입고 되었다.

『저 청소 일 하는데요?』. 청소 노동을 하는 일러스트레이터의 이야기가 그려진 책이다. 서툴지만 여운이 길었다.

여기에도 구겨진 얼굴이 있었다.

구겨진 얼굴을 오래 공들여 들여다보는 일. 아무리 바빠도 이 일에 기꺼이 짬을 내고 싶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요조 뮤지션 chaegbangmusa@gmail.com
뮤지션. 제주의 책방 ‘책방무사’ 대표. 『눈이 아닌 것으로도 읽은 기분』을 썼다. 팟캐스트 ‘책, 이게 뭐라고’를 장강명 작가와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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