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 세제개편」의 평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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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재무부가 17일 발표한 「88 세제개편안」은 민주화시대, 사회 각계각층의 요구가 분출하는 가운데 성안된 정부의 정책방향제시라는 점에서 각별히 주목하게된다. 종래의 세제는 한번의 예외도 없이 만성적인 국제수지적자와 경제개발 최우선 정책을 전체로 여대야소의 국회에서 증세와 징세 편의위주로 개편이 강행되어 왔다.
그러나 이번 개편 안은 국제수지흑자, 소득의 향상, 정치적 민주화라는 극적인 상황변화 속에서 소득분배의 개선과 사회복지 향상을 요구하는 국민의 소리가 어느 정도 반영되었다. 투자재원 확보를 위한 세수증대, 소비억제, 저축증진 정책보다 상대적으로 복지증대와 세금부담의 완화가 더 우선해야하는 현실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번 세제개편의 특징은 ①중산층 이하의 세금경감 ②재산소득 중과 ③조세감면과 특혜의 축소 ④세율체계의 간소화 ⑤간접세의 축소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정부가 그 동안 봉급생활자의 소득에만 연연했던 과세정책에서 탈피해 재산소득 쪽으로 눈을 돌린 것은 높이 평가할 일이다.
사실 저소득층의 자잘한 소득에까지도 눈독을 들이는 과세정책은 사회기층의 불만을 해소하고 안정된 중산층을 확보한다는 고도의 정책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 동안 공공법인에 대한 법인세나 비영리법인에 대한 이자소득세 등은 경제개발과정에서 감면과 특혜의 조치가 계속되어 왔지만 이번 세제개편에서는 신규감면을 동결하는가하면 기존감면의 폭도 축소하고있다. 이와 함께 외국자본에 대한각종 조세 감면조치를 폐지한 것은 국제수지의 흑자에 따른 시의 적절한 조치로 평가된다.
다만 수출산업에 대한 세제상의 특혜를 축소한 것은 원화 절상의 부담과 보호무역이 강화되고 있는 세계시장의 현실에선 보다 신중한 편이 더 현명할 것 같다. 무역흑자라고는 하지만 이제 겨우 2년의 기록을 갖고 있을 뿐이며 그 뿌리는 아직도 나약한 형편이다. 수출전망 또한 그리 희희낙락할 수만은 없다.
정부는 이번 세제개편으로 1조 6천억원의 세수감소가 있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해마다 세수는 당초계획을 훨씬 넘고 있어 걱정할 일은 아니다.
문제는 저소득층의 소득재분배요구와 사회복지에 대한 국민의 요구가 날로 높아 가는 현실을 정부는 이번 세제개편으로 과연 얼마나 감당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단순히 봉급생활자의 세 경감만으로 충족될 문제는 결코 아니다.
결국 이런 요구를 만족시킬 재원을 새로 확보하는 수밖에 없으며 그것은 새로운 세원을 포착하는데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종합토지세제나 금융실명제가 뒤로 미루어지고 있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종합토지세제의 경우 토지전산화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다는 것이 좋은 핑계가 되고 있지만 정부가 그런 노력을 진작 해오지 않은 것은 달리 변명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또 하나 지적해 두어야 할 문제는 공공기관의 법인세 상향조정이 경영쇄신으로 흡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공공서비스 요금의 인상으로 전가된다면 「88 세제개편」의 의미는 반감되고 만다.
우리는 이번 세제개편에 나타난 정부의 성실한 노력은 평가하지만 이것은 아직 시작에 불과하고 이제부터 국민의 요구와 국가경영의 대계에 균형을 유지하면서 정책을 다듬는 또 다른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충고를 잊지 않는다. 세금의 문제만큼 국민의 생활과 국가의 발전방향에 구체적으로 영향을 주는 문제도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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