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벼 싹이 나기 전에 …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5면

17일 오전 미군기지 이전에 반대하는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주민들이 기지 이전 예정 부지인 도두 2리 농지에서 못자리를 만들고 있다. [평택=연합뉴스]

국방부가 미군기지 이전 부지인 평택시 팽성읍 대추.도두리 일대 285만 평을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17일 알려졌다.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설정되면 해당 지역 주민들은 재산권 행사가 제한되고, 군 경비 병력이 배치돼 민간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된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일부 주민들과 평택미군기지 확장 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이하 평택범대위) 등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 "군사시설보호구역 지정"=국방부 관계자는 이날 "미군기지 확장을 반대하는 주민과 시민단체의 영농행위를 차단하고 시설공사를 조기에 시작하기 위해 팽성읍 일대 285만 평을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 경찰에 경비를 요청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며 "측량 등 부지 조성작업에 착수하기 위해 공병과 경계병력을 투입, 철조망을 치기로 했다"고 밝혔다. 경계병력 투입 시기는 기지 예정지구 일대에 뿌려진 볍씨가 눈을 틔우기 전이 될 전망이다.

이와 관련, 미군기지 이전 사업단 창설준비단장인 박경서 육군 소장은 "영농행위를 방치하게 되면 사업 지연과 예산 부담은 물론 한.미 갈등으로 비화할 수 있다"며 "농민들이 뿌린 볍씨가 4~5㎝ 자라면 경작물의 소유권을 인정받기 때문에 계속 방치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현재 기지 확장에 반대하는 평택범대위 등은 일대 80만 평에서 논갈이를 마치고 다음달부터 모내기에 들어갈 계획이다. 또 마른 논에 볍씨를 뿌린 대추리 일대에서는 이달 말께 볍씨에서 싹이 나올 전망이다.

이에 따라 군사시설보호구역 지정은 늦어도 다음달 초순 이전일 것으로 관측된다. 국방부는 그러나 이달 말까지 평택범대위.주민 등과 최대한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 주민 반발=평택범대위는 이날 긴급성명을 내고 "군사시설 없이 농지와 가옥만 남은 팽성읍 일대를 군사보호구역으로 지정한다는 것은 군대를 동원해 국민을 내몰겠다는 군사독재정권 시절에나 가능한 발상"이라고 규탄했다. 이호성 평택범대위 상황실장은 "공병 장비와 병력을 동원해 주민 퇴거를 추진한다면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런 가운데 이날 주민들은 국방부의 방침에도 아랑곳없이 미군기지 일대에 못자리를 만들고 2만5000여 평의 논에 볍씨를 뿌리는 등 올 농사에 들어갔다.

김지태 대추리 이장(미군기지 확장반대 팽성주민대책위원장)은 "다음달 15일부터 기지 이전지역 10만~20만 평에서 모내기를 할 것"이라며 "특히 장비와 인력 동원이 쉽지 않은 대추리 일대의 경우 마른 논에 직접 볍씨를 뿌려 싹을 틔울 것"이라고 말했다.

팽성읍 주민들과 평택범대위는 기지 이전지역 285만 평 가운데 80만 평을 논갈이했으며, 나머지 205만 평 중 현재 20여만 평에 직접 볍씨를 뿌려 올해도 농사를 지을 태세다.

김민석 기자, 평택=정영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