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평화 '아라파트 암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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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이스라엘 내각이 11일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의 축출을 선언함에 따라 로드맵(단계별 평화안)이 더 깊은 수렁으로 빠졌다. 이날 이스라엘은 긴급 안보내각 회의를 열어 지난 9일 텔아비브와 예루살렘에서 하마스 무장대원들이 저지른 두건의 자살 폭탄테러에 맞서 아라파트 수반을 '원칙적으로' 축출하는 방안을 승인했다.

이스라엘은 그러나 국제사회의 반발을 의식해 "축출 시기와 방식은 추후 결정될 것"이라고 밝히면서 아흐마드 쿠라이 팔레스타인 총리 지명자에게 일단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를 단속할 기회를 제공했다.

현지 언론들은 "아라파트의 축출은 이미 계획된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 사울 모파즈 국방장관 등 강경파들이 '아라파트는 모든 테러의 원흉'이라며 그의 축출을 공공연히 요구해왔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라디오 방송도 12일 "이스라엘군 특수부대가 아라파트를 납치, 북아프리카의 한 국가로 추방하는 계획을 2년여 전에 수립해 훈련을 실시해왔다"고 보도했다.

국제사회는 이스라엘 정부의 아라파트 추방 결정에 즉각 반발했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12일 성명에서 "아라파트 축출은 어리석은 일"이라 규정하고 "이 문제를 재고하라"고 강력히 촉구했다. 미국도 콜린 파월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 등이 나서 "아라파트 축출 결정은 그에게 더 넓은 무대만을 제공할 뿐"이라고 경고했다.

분노한 팔레스타인 주민 수백명도 11일과 12일 자치정부 청사에 집결해 아라파트 수반에 대한 지지 시위를 벌였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은 "아라파트 수반이 공격당하면 팔레스타인인들의 분노의 화산이 폭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이스라엘의 이번 결정에 아리엘 샤론 총리의 개인적인 감정도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집트 아흐람 전략.정치연구소 이마드 하그 박사는 "샤론과 아라파트는 이스라엘이 건국된 1948년 이전부터 충돌해온 양측의 민병대 대원으로 활동했다"며 "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당시 이스라엘군의 최고 지휘관이었던 샤론 장군이 아라파트를 체포하거나 사살하도록 명령하면서 두 사람의 감정은 극에 달했었다"고 지적했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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