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름 챔프 김영현과 김용대의 두 얼굴

중앙일보

입력

한가위 모래판에서 울려나온 ‘골리앗 크레인’과 ‘탱크’의 굉음에 눌려 태풍 ‘매미’조차 울음 소리를 죽였다.

추석 연휴기간(10-12일) 부천시 부천체육관에서 열린 2003 세라젬배 추석장사씨름대회에서 ‘원조 골리앗’ 김영현(신창 건설)과 ‘모래판의 탱크’ 김용대(현대 중공업·한라급)가 각각 백두급과 한라·금강 통합장사에 올랐다.

김영현은 백두급 결승에서 김경수(LG투자증권)에게 거푸 안다리를 허용해 0-2로 밀리면서 패색이 짙었으나 나머지 세판을 내리 밀어치기로 밀어부쳐 3-2로 역전승을 거두고 황소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지난해 7월 서산대회이후 1년2개월만에 타보는 꽃가마였다.

김용대는 한라·금강 통합장사 결승에서 조범재(신창)를 3-1로 눌렀다.

그러나 꽃가마를 탄 두 장사의 표정은 미묘하게 엇갈렸다.
김영현은 우승이 확정된 뒤 거듭 포효하며 울먹였다.결국 이준희 감독이 직접 도포를 입혀주며 다독거려야 했다.

“이젠 아내가 욕을 먹지않아도 돼서 너무 기쁩니다.”

무슨 말일까.

“결혼을 한뒤 성적이 나빠졌어요.그래서 제 부진이 아내탓이라는 말이 들렸지요.오늘에야 아내의 ‘누명’을 벗겨줬어요.홀가분합니다.”
김영현은 아내 노태연씨(25)에게 달려가 포옹했다.노씨는 아무말 없이 그저 웃기만 했다.

사실 최근 김영현은 ‘한물 간 선수’로 통했다.지난 6월 번외경기로 열린 자인단오장사대회에서 이태현(현대)의 기권으로 우승을 차지하긴 했지만 정규대회에서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며 1년 이상 부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 확 달라졌다.4강전에서 최홍만을 자신있게 누인 뒤 결승에서 김경수의 안다리에 말려 절벽끝까지 밀린 상황에서도 기사회생했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다고 생각했지요.이를 악물고 훈련했어요.특히 최홍만을 겨냥해 팀내 장신선수들을 상대로 끊임없이 연습했습니다.”

다시 장사로 태어난 그의 올해 목표는 뭘까.

“당연히 남은 전 대회를 석권하는 겁니다.천하장사도 물론 차지해야지요.현재 제 몸무게는 1백56㎏이예요. 전성기때보다 1㎏가 더나가는 거죠.해볼만 합니다.”

오랫만에 김영현의 얼굴에 자신감이 넘쳐 흘렀다.

반면 김용대의 표정은 다소 어두웠다.

“전 무지하게 손해봤어요.”

김용대는 뚜벅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이유는 이렇다.그는 이미 지난 6월 장성장사씨름대회의 우승으로 김선창(신창)이 보유중인 한라급 최다우승기록 타이기록(12승)을 달성했다.따라서 이번 대회 우승으로 그는 신기록을 작성한 셈이다.그러나 이 기록은 신기록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한국씨름연맹은 “^이번 대회가 한라·금강 통합대회이고 ^지난 대회 8강에 대한 시드 배정없이 치러진 번외경기이기 때문에 한라급 우승으로 볼 수 없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이만기 인제대교수(KBS해설위원)과 성석윤 인천대 감독 등 일부 씨름인들이 현장에서 “말도 안된다”고 반발했지만 연맹의 입장은 확고했다.결국 김용대의 신기록 작성은 다음 대회로 미뤄지게 됐다.

“올스타전에서 두번 우승한 것까지 합치면 전 세번의 우승기록을 잃어버린 셈이예요.”

억울해죽겠다는 표정이지만 얼른 마음을 추스렸다.

“최근 골프를 배웠어요.욕심이 앞서니까 아무 것도 안되더라고요.조준제 단장님도 늘 ‘마음을 비우라’고 하세요.이젠 정말 마음을 비우고 오직 경기만 보겠어요.그러면 성적과 기록은 자연 따라오겠지요.”
그는 어느새 ‘탱크’다운 듬직한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부천=진세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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