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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훈의 축구.공.감] 차붐이 인정한 두 천재, 손흥민-이승우의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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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두라스전에서 첫 골을 합작한 뒤 기뻐하는 손흥민(왼쪽)과 이승우. [연합뉴스]

온두라스전에서 첫 골을 합작한 뒤 기뻐하는 손흥민(왼쪽)과 이승우. [연합뉴스]

차범근 전 축구대표팀 감독이 인정하는 ‘차붐 후계자’ 후보 1순위는 단연 손흥민(26ㆍ토트넘 홋스퍼)이다. 차 전 감독의 현역 시절과 플레이스타일이 비슷할 뿐만 아니라 독일 분데스리가를 거쳐 유럽 무대에서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다는 점이 닮았다. 자신이 유럽 무대를 누비며 세운 값진 기록들을 차근차근 따라잡는 손흥민에 대해 차 전 감독은 “(손)흥민이 덕분에 숨겨져 있던 내 기록들도 함께 부각돼 흐뭇하다. 흥민이가 더 많은 내 기록들을 찾아내 자기 것으로 만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차 전 감독이 천재 공격수로 인정한 또 한 명의 선수가 있다. ‘코리안 메시’ 이승우(20ㆍ헬라스 베로나)다. 차붐과 손흥민이 순간 스피드를 활용해 상대 수비진의 뒷공간을 허무는 스타일이라면, 이승우는 수준 높은 발재간으로 상대 수비수들을 따돌려 슈팅 찬스를 만들어낸다. 차 전 감독은 “지난해 4월 잠비아와 20세 이하 대표팀 평가전에서 이승우가 마주선 골키퍼의 키를 살짝 넘기는 칩슛으로 골을 넣는 모습을 보고 소름이 돋았다”면서 “무서울 정도로 침착한 드리블 돌파,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골을 만들어내는 천재성을 겸비했다”고 칭찬했다.

손흥민이 온두라스전 선제골 직후 동료 선수들과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다. 양광삼 기자

손흥민이 온두라스전 선제골 직후 동료 선수들과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다. 양광삼 기자

서로 다른 장점을 가진 두 선수가 함께 공격을 이끈다면 어떤 그림이 만들어질까. 28일 대구스타디움에서 열린 온두라스와 A매치 평가전은 축구팬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떠올려봤음직한 이 궁금증을 다소나마 해소하는 기회가 됐다.

기대했던대로 두 선수는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이승우는 A매치 데뷔전이라는 사실을 잊게 만들 정도로 대표팀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개인기를 활용한 돌파와 과감한 슈팅으로 대표팀의 공격 흐름을 주도했다. 동료에게 공을 넘긴 뒤 곧장 빈 공간을 찾아 이동하는 ‘패스&무브’에 익숙한 선수라 온두라스 수비들이 애를 먹었다. 이승우가 상대 수비들을 달고 움직이는 장면이 많아지면서 손흥민을 비롯한 동료 공격수들에게도 찬스가 늘었다.

이승우가 온두라스전에서 드리블 돌파로 상대 수비수를 제치고 있다. 뉴스1

이승우가 온두라스전에서 드리블 돌파로 상대 수비수를 제치고 있다. 뉴스1

손흥민은 ‘해결사’ 이미지 그대로였다. 후반 15분 이승우의 패스를 받아 시도한 왼발 중거리 슈팅은 순간적인 판단력과 정확한 슈팅을 버무려 만든 ‘손흥민 특제’ 골이었다. 유럽 진출 당시 손흥민은 아크 서클 주변에서 감아차는 슈팅을 하루 수 백번씩 반복했다. 해당 구역은 ‘손흥민 존’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득점력이 갈수록 성장하면서 ‘손흥민 존’의 크기는 점점 넓어지고 있다. 한때 영국 언론이 ‘골대로부터 20m 이내의 구역에서는 완벽한 킬러’라 칭찬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최근에는 해당 범위를 벗어난 공간에서도 종종 득점포를 터뜨린다.

두 선수는 ‘한국축구 엘리트 코스’를 거치지 않은 선수라는 공통점도 있다. 손흥민은 동북고를 중퇴하고 독일 함부르크로 건너갔다. 국내에 머물던 시절에도 팀 플레이 대신 아버지와 함께 개인훈련에 몰두하는 시간이 길었다. 이승우는 대동초 졸업반 시절 스페인 프로축구 FC 바르셀로나 관계자의 눈에 띄어 광성중 1학년 때 스페인으로 건너갔다. 대표팀 주장 기성용(29ㆍ스완지시티)도 호주에서 축구를 완성한 케이스다.

온두라스 선수와 신경전을 벌이는 이승우. 뉴스1

온두라스 선수와 신경전을 벌이는 이승우. 뉴스1

성장 기반이 외국이다보니 일찌감치 해외축구 경기 분위기에 적응했다. 온두라스전에서 이승우가 상대 수비수들과 유창한 스페인어로 대화를 나누며 신경전을 펼치는 장면이 여러 차례 눈에 띄었다. 국내 팬들에겐 어색한 모습일 수 있지만, 유럽이나 남미에선 흔한 장면이다. 손흥민도 A대표팀 발탁 초기엔 독일어로 대화가 가능한 상대 선수들과 입씨름을 벌이곤 했다. 기성용 또한 축구대표팀에서 ‘영어로 이뤄지는 어필과 말싸움’을 전담했다. 심판의 눈을 피해 이뤄지는 신체접촉까지 포함해 그라운드에서의 기싸움은 상대를 제압하는 또 하나의 무기다.

손흥민과 이승우가 서로 다른 장점으로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내면서 러시아월드컵 본선에 대한 기대감도 다시금 높아지는 분위기다. 두 선수 모두 한국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던 유형의 공격수들이다. 두 선수의 호흡이 기대 이상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신태용 축구대표팀 감독도 ‘에이스 손흥민의 고립’이라는 골치아픈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찾았다.

축구대표팀 출정식에서 차범근 전 축구대표팀 감독이 손흥민을 격려하고 있다. [연합뉴스]

축구대표팀 출정식에서 차범근 전 축구대표팀 감독이 손흥민을 격려하고 있다. [연합뉴스]

권창훈(24ㆍ디종)이라는 완성형 공격 카드를 부상으로 잃은 상황에서 이승우라는 대체카드를 신속히 발굴한 것만으로도 우리 대표팀엔 천우신조다. 러시아월드컵 첫 승 목표물로 점찍은 스웨덴과의 경기에서 두 선수가 득점을 합작할 수 있다면, 이를 통해 16강행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면 흥행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던 한국축구도 부활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 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차범근 전 축구대표팀 감독이 자택을 방문한 이승우에게 유럽 무대에 적응하고 살아남는 방법에 대해 조언하고 있다. 신인섭 기자

차범근 전 축구대표팀 감독이 자택을 방문한 이승우에게 유럽 무대에 적응하고 살아남는 방법에 대해 조언하고 있다. 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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