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바이어, 동대문에 줄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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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쇼핑객들이 서울 동대문 패션타운 7층의 한 액세서리 상점에 들러 물건을 살펴보고 있다.이수기 기자

16일 오후 4시 서울 동대문 두산타워 7층의 8평 남짓한 액세서리 매장. 점포주인 김희정(45)씨가 중국인 손님과 북 모양 열쇠고리를 놓고 한창 흥정을 벌이고 있었다. 뜨내기 관광객이 기념품 몇 개 사가려는 게 아니었다. 대량 구매를 해다가 자기 나라에서 팔려는 수출상담이었다.

2000년 여기에 점포를 얻은 김씨는 이제 수출업체 사장이 됐다. 2004년 말부터 물건을 해외에 보내 입소문을 얻으면서 일본.대만 상인들의 팩스.e-메일 구매 문의가 이어졌다.

동대문 패션타운은 이제 더 이상 내수 상가가 아니다. 김씨처럼 주문을 받아 좋은 물건을 순발력 있게 만들어내 해외에 파는 점포가 급증하면서 수출기지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수출 대열에는 도매 뿐 아니라 소매 상인들까지 가세해 장기 내수 침체에 따른 판매부진을 메우고 있다. 의류 등 직물류에서 액세서리 같은 잡화류에 이르기까지 품목도 다양하다.

지난 13일 동대문 패션타운 인근의 광장시장에서 직물업체를 하는 백승기(54)씨는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에 보내기로 한 실크 원단 160m(160만원 상당)를 포장하고 있었다. 그는"외환위기 이후 매출이 30% 이상 줄었는데 해외 판매를 통해 이를 꽤 만회했다"고 말했다. 일본.홍콩 등지 50여 해외 거래처에서 거두는 판매실적이 전체의 30% 에 달한다는 설명이다.

액세서리 가게의 김희정씨는 지난달 29일 대만 가오슝에 한복 인형 20개(총 15만원 상당)를 수출했다. 수출은 대개 팩스.e-메일 주문을 받아 국제특급운송(EMS)으로 물건을 보내는 식이다. 일주일에 한번 꼴로 성사되는 일본.대만 상인들과의 거래를 통해 매상의 10% 정도를 올린다.

값싼 중국산 섬유제품에 비해 디자인과 구색이 뛰어나다는 게 동대문 패션타운의 강점이다. 지난달 일본 히로시마에 티셔츠 480벌을 수출했다는 상인 김모(38)씨는 "12가지 색상의 옷을 주문받아 나흘 만에 보냈다"며 "다양한 주문을 이렇게 즉각 응할 수 있는 곳은 동대문 시장 밖에 없을 것"이라 말했다.

최근 여성의류 1200만원 어치를 주문했다는 일본인 묘조 요시유끼(明照佳幸.45)씨는 "동대문 상품의 질과 디자인은 중국산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말했다. 상인들의 수출을 돕는 동대문 시장 내 외국인 구매안내소도 덩달아 바빠졌다. 올들어 지난 3월까지 안내소가 중개해 성사된 해외 거래 실적은 57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보다 67.3% 늘었다. 안내소에 이름을 올린 해외 바이어도 2000명을 넘어섰다.

고동철(55) 안내소장은 "동대문 상인의 해외수출규모는 건당 100만~500만원이 보통"이라며 "이 일대 3만여 점포 중 20% 이상이 해외 거래를 한다"고 말했다. 서울산업통상진흥원은 올 상반기 중 동대문 일대 상가를 소개하는 수출용 카탈로그를 제작해 해외 바이어와 KOTRA 해외 무역관 등에 배포할 방침이다.

이수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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