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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통 옷감이 이탈리아 디자인을 만났을 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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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5호 06면

한국전통문화대-유럽디자인학교 ‘투 에토스’전

최근 패션계의 최고 키워드는 복고다. 1980~90년대 유행이 다시 인기인데, 업계의 요인 분석이 흥미롭다. 젊은 세대들에게 복고는 촌스러운 게 아니라 그저 새로운 것이라는 것이다. 아예 히스토리를 모르는 디자인인지라 낡고 오래됐다는 판단조차 서지 않으니, 딱 봐서 예쁘고, 신기하고, 남다르면 될 뿐이다.

사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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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부터 28일까지 서울 인사동 KCDF 갤러리에서 열리는 ‘투 에토스(Two Ethos)’ 전시도 이 ‘낯설게 보기’에서 출발한다. 문화재청 한국전통문화대학교와 이탈리아 유럽디자인학교(Istituto Europeo di Design·IED)의 공동 프로젝트로, 국내 학생·장인이 직조한 전통섬유를 유럽 학생과 디자이너가 옷·핸드백·구두·액세서리로 탈바꿈시켰다. 우리에겐 한없이 익숙한 한국적 소재를 이방인들은 어떻게 볼 것인지, 또 어떻게 변주할 것인지 눈으로 확인할 기회인 셈이다.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이끈 김성희 주얼리 디자이너는 17일 오프닝 행사에서 비슷한 메시지를 전했다. “우리가 전통적, 옛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외국 디자이너들의 눈에는 오히려 새로운 것으로 비춰져 얼마나 현대적인 제품으로 탄생했는지 눈여겨 봐주기 바랍니다. 전통은 혁신되어야 하고 현대에 스며들 때 비로소 미래를 위한 또 다른 전통을 창조해낼 수 있으니까요.”

전시는 크게 3개 섹션으로 구성된다. 첫 섹션은 한국 학생들과 장인의 작업물로, 실제 작품에 쓰인 옷감을 모아놨다(사진1). 한산모시짜기 기능보유자(중요무형문화재 제14호) 방연옥 선생이 제작한 모시와 안동포를 비롯해 연구를 통해 복원한 직금(織金·금사를 넣어 짠 직물) 직물, 그리고 전통 직물을 창의적으로 응용한 직물이 한 자리에 등장한다. 특히 자개를 수놓은 나전직단, 실을 묶어 염색한 뒤 직조한 이캇 춘포(모시의 일종) 등이 눈길을 끈다. 학생들을 지도한 심연옥 교수(전통섬유 전공)는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는 불만이 나올 정도로 일일이 수작업을 하며 전통 방식을 고수했다”고 털어놓는다.

사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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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섹션으로 발길을 옮기면 드디어 IED 학생들의 작품들이 나타난다. 테마는 ‘여행’으로, ‘이탈리아 학생들이 한국이라는 미지의 세계로 떠난다’는 의미다. 낯선 나라의 낯선 소재라 난감해 하는 학생들이 많았다지만, 작품만큼은 전통과 동시대적 감성을 어느 하나 놓치지 않고 표현하고 있다. 춘포를 이용한 미니멀 화이트 코트, 삼베와 가죽을 짝지은 바이커 재킷, 나전직단을 포인트 삼은 클러치 등이 대표적이다.

영예의 우승은 이번 프로젝트의 취지를 가장 잘 살린 작품에 주어졌다. 선라(명주와 모시풀을 섞은 옷감)와 이캇 춘포를 활용해 몸통은 마치 갑옷처럼 형태감을 갖춘 반면 소매는 이탈리아 니트를 써서 무릎까지 길게 늘어뜨린 디자인이 차지했다(사진2). 주최 측은 “두 나라의 소재를 섞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색이 변하는 그라데이션 컬러를 택해 통일감을 준 것이 탁월했다”고 밝혔다.

나전 직단을 사용한 푸른 산호 화병

나전 직단을 사용한 푸른 산호 화병

전시는 이탈리아 학교를 넘어, 유럽 아티스트와 브랜드들의 작품으로 마무리된다. 김성희 디자이너는 경기도 용인 영덕동 무연고의 무덤에서 발견된, 16세기 여성 저고리에 사용된 직금 직물을 복원한 금원문직금능(金圓紋織金綾)을 이용해 목걸이 펜던트를 선보였다. 또 21세기 가장 창조적인 구두 디자이너라 호평 받는 코비 레비는 당혜의 코 부분이 특징으로 삼아 붉은 색 나전직단과 짝지은 블랙 하이힐을 제작했다.

글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사진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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