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적책읽기] '통일=선' 감상주의 파멸 불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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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남주홍 지음
랜덤하우스중앙
276쪽, 1만5000원

통일은 해야 하는가.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북한은 우리가 껴안아야할 파트너인가 아니면 끊임없이 경계해야할 '불량국가'인가. 이번 주 신설되는'비판적 책읽기'는 '통일은 없다'의 출간을 계기로 이같은 질문을 던져봅니다. 이 책의 문제의식은 통일 3년 만에 독일 지식인들이 "통일 독일의 정체성 위기가 제2의 분단을 가져오고 있다"고 경고하는데서 출발했습니다. 저자 남주홍 경기대 교수(국제정치학)는 "핵으로 무장한 북한은 우리의 통일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 정책과 이를 계승한 지금의 노무현 정부의 대북 정책을 '감상적 통일론'이라고 비판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두 학자가 그의 논거를 찬.반 시각에서 검토합니다. 고유환 교수는 이 책이 "북의 군사력은 과대평가하고 우리의 대북 억지력은 과소평가한 패배주의적 발상"이라고 비판합니다. 반면 제성호 교수는 "어떤 통일도 선이라는 생각은 비현실적이며 무리한 통일은 파멸을 가져올 수 있다"고 옹호합니다.

“모든 통일은 좋은가?”민족주의자 장준하는 1970년대에 그렇게 물었다. 그리고 대답했다. “그렇다”라고. 이제 ‘통일은 없다’의 저자는 다시 말한다. “빠른 통일이 아니라 바른 통일이 건”이라고.


통일은 남.북한이 단순히 분단 이전 상태로 돌아가는 복고적 개념이 아니다. 2개의 정치 실체가 공간적으로 하나 되는 영토적 통합만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통일은 21세기 탈민족.세계화 흐름과 조화를 이루며 하나의 새로운 민족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또한 민족 성원의 불필요한 희생을 강요하거나 자유를 심대하게 제약하는 통일은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러려면 대한민국 헌법 제4조가 명시하듯이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한 것이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 국민의 헌법적 결단이다. '어떤 통일도 선'이라는 감상적 통일론은 곤란하다. 현재 남.북한은 자유민주주의와 '우리 식 사회주의'라는, 서로 상극적 이념과 체제를 견지하면서 첨예한 정치.군사적 대결을 지속하고 있다. 통일을 이룩하려면 상호 간에 체제가치의 동질성이 전제돼야 하는데 아직까지 이러한 기본조건이 성숙돼 있지 못하다. 따라서 먼저 북한을 자유민주주의로, 곧 개혁과 개방, 인권 개선, 체제 민주화로 유도해야 한다. 대북정책의 목표와 방향은 바로 여기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그런데 북한은 지금 본질적인 체제개혁과 변화를 거부하고 있다. 핵무장을 시도하며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낮은 단계 연방 구성 등 '6.15 방식'에 의해 '빠른' 통일을 추진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때문에 '통일은 없다'는 무리한 통일 시도는 예멘처럼 내전을 촉발할 수도 있음을 지적한다.

저자의 통일론은 적대적 분단의 현실에서 '북핵문제 해결이 없이는' 또 북한의 '근본적인 체제변화가 없는 한' 통일은 불가능하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근본적 변화의 지표는 수령제 포기, 정치적 다원주의 채택, 시장경제체제 정착, 적법절차 보장 등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군사안보적 신뢰 구축과 검증에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 단계에서 가장 긴요한 것은 분단의 평화적 관리다. 이를 위해서는 한.미동맹의 적극적 활용과 한반도 평화외교가 절실하다. 그러나 이 점과 관련해 저자는 노무현 정부의 포퓰리즘 외교에 우려를 표명한다. 특히 자주국방론과 평화체제론의 문제점을 따지고 있다. 전시 작전통제권의 조기 환수 추진은 주한미군 철수의 위험성이 있음을 경고한다.

협력과 지원 위주의 햇볕 논리, 안보 불감증과 통일지상주의가 가득한 작금의 실정에서 이 책은 한국의 안보 상황을 예리하게 분석하고 냉철히 대처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 책에 대한 적극적 지지는 그 때문이다.

제성호 교수<중앙대.법학>


이 책은 한반도와 동북아 안보체제문제를 정치.군사 중심의 전략 현실주의 관점에서 다룬다. 안보전문가인 저자의 북한 핵무기와 탄도 미사일개발에 관한 분석은 북한의 대량살무기(WMD) 개발 실태를 이해하는데 많은 참고 자료가 될 것이다. 하지만 안보 우선론의 시각에서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의 남북관계 발전을 북한의 통일전선전술에 말려든 것으로 평가절하하는 등 지나친 우편향을 보이고 있다.

저자는 김대중 정부를 햇볕정책 정부라 지칭한다. 또 지금의 노무현 정부는 냉전구조 해체를 통한 평화체제 구축노력,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와 자주국방을 위한 노력을 하는 좌파 정부라고 규정한다. 그러면서 한미동맹 강화를 주문한다.

그는 "우리가 원하는 것은 '바른' 통일이지 '빠른' 통일이 아니라고 하면서 "통일은 없다"고 강변한다. 이는 햇볕정책을 '빠른' 통일을 추구하는 대북 유화정책쯤으로 오해한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햇볕정책을 "평화적 이행전략의 변종"이라고 경계한 것처럼 햇볕정책은 전쟁 없는 기능주의 통합전략으로 봐야 한다. 햇볕정책은 접촉.제공.대화를 통한 북한 변화를 유도하는 공존에 기초한 화해협력정책이다. '빠른' 통일을 추구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저자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능력은 과대평가하면서 남.북간 국력격차와 우리의 대북 억지력은 과소평가한다. 또 북한의 통일전선전략(혁명전략)과 우리의 조급한 평화체제 구상 등에 의해 북한보다 남한이 먼저 '급변 사태'를 맞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우려하지만, 이야말로 패배주의 발상이 아닌지 반문하고 싶다. 안보에 대한 강조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현 정부의 외교안보팀을 '반미.자주' 성향의 좌파로 몰아붙이는 선동은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흔히 안보를 강조하면 통일은 멀어지고 통일을 강조하면 안보가 무너진다는 식으로 안보와 통일을 서로 상충관계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제 그러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전시작전통제권을 환수해 자주국방을 튼튼히 하면서 남북화해협력을 진전시켜 나가면 역사발전 추세에 맞게 통일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소모적인 분단체제에 안주하면서 위기관리란 명분하에 현상유지정책을 지속하는 것은 분단을 고착시키는 행위다. 어렵고 힘들지만 냉전구조해체라는 현상타파의 길을 열어나가야 한다. 현상유지정책에 입각한 대북 '무시정책'으로는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보장할 수 없다.

고유환 교수<동국대.북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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