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 이번엔 “부처도 없다” 하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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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이웃종교로 읽다
오강남 지음, 현암사, 376쪽, 1만5000원

'불교, 이웃종교로 읽다'에 따르면 불교는 더 이상 동양문화권의 종교만이 아니다. 철학자 쇼펜하우어.니체, 혹은 문필가 헤세.에머슨.소로.휘트먼 등 불교에 심취했던 옛날 사람들일랑은 잠시 잊자. 불교가 대중화의 길로 들어선 것은 2차 세계대전 직후. 주요대학에 종교학과가 설립된 것은 1960년대부터다. 흥미로운 건 책이 전하는 다음 정보.

서양불교는 주로 지성인들 사이에서 영향력이 크고 경전 읽기와 명상 위주로 전개된다. 인도.한국 등지의 기복적이고 의식(儀式) 중심의 불교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라서 그들은 자기네의 불교에 새로운 문패를 달기 시작했다. 엘리트불교.신불교(new buddhism) 혹은 백인불교(white buddhism)라고…. 그러면 인도.한국 등지의 불교는 뭐라고 부를까? 민족불교(ethnic buddhism) 혹은 세습종교(hereditary buddhism).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불교의 오늘을 보여주는 이 책의 저자인 캐나다 리자이나대의 종교학자 오강남 교수는 무엇보다'예수는 없다'와 역주본 '장자''도덕경' 등으로 기억되는 이름. '세계종교 둘러보기'를 펴내기도 했던 그가 펴낸 이 책은 최근 선보인 불교 입문서 중 그중 이채롭다. 친근하고 쉬운 서술이라는 점, 그러면서도 무엇보다 깊이와 넓은 시야를 담보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전적 고백을 겸한 서문부터 인상적이다.

"저는 극히 보수적인 그리스도교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지금은 그 극히 보수적인 종파를 떠나 캐나다연합교회와 퀘이커(무교회주의) 모임에 참석하고 있지만 제게 처음으로 종교에 관심을 갖게 해 준 그 보수적 그리스도교 종파에 언제나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자란 저는 당연히 불교나 다른 종교를 신봉하는 이들을 유감스럽게도 구원에 이르지 못할 운명에 처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디서 향 피우는 냄새가 나도 뭔가 음험한 것을 연상하기 일쑤였습니다."(4쪽)

'나만의 종교'에서 벗어난 지 오래인 그는 서구인을 대상으로 불교와 종교학을 가르쳐 왔다. 그런 이력을 토대로 근본주의적 성향의 한국기독교에 대한 성찰의 책인 '예수는 없다'를 몇 해 전 펴냈다. 환갑을 조금 넘긴 지금 오교수가 '비교종교학적 불교서'를 펴낸 것도 자연스럽다. 이 신간은 부처님의 생애와 인도불교의 전개과정과 동아시아의 불교를 더듬은 개괄서다. 동아시아불교, 서양불교 편도 따로 서술됐다.

사람에 따라서는 조금 심심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기독교는 물론 노장 사상까지 훌륭한 하모니를 이룬 채 불교를 새롭게 설명하고 있어, 독자적인 묘미로 연결된다. 이를테면 부처님은'세상은 영원한 것인가' 등 14가지 형이상학적 물음에는'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라며 침묵을 지켰다. 저자는 그 대목을 "사변에 끼어드는 모순을 피하려는 노력"이라고 설명하며 성경과 논어를 인용한다.

빌라도가 "진리가 무엇인가"하고 물었을 때 예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제자들이 죽음에 대해 묻자 공자 역시 "삶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이라며 피해갔다는 식의 서술 말이다. 이런 접근은 '장자' '도덕경' 풀이에서 낯익은 서술이다. 종교학자가 보는 불교와 불교서적은 확실히 그 나름의 매력이 있다.

그럼에도'열린 종교'신봉자인 오교수는 지금의 한국사회 풍토가 못 미더웠나 보다. 이 책 맺음말에서 그는 '예수는 없다'라는 자기 책의 제목대로 이 책의 제목 역시 '부처는 없다'는 식으로 고쳐 읽어도 좋다고 말한다. 그동안 편견 속에서 이해해온 예수.부처는 이제 그만 내려놓아보라는 주문이다.

조우석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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